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속담말ㅆ·미]냉수 한 사발 하실래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길이 좀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일러드리며 겨우 도착했지요. 도착지에서 요금을 드리니 기사님이 거스름돈 몇 백 원을 안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거스름돈을 달라고 하니 매우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머뭇머뭇 주시더군요. 딴에는 힘들게 찾아왔고 오면서 이런 데 가달라고 해서 죄송하다 하니 이 정도는 그냥 가지라고 할 줄 아셨나 봅니다.

흔히 상대방은 해줄 생각도 없는데 지레짐작으로 은근히 바라거나 착각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 있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옆집에서 떡 하는 소리가 들리니 으레 ‘우리 집에도 갖다 주겠지’ 싶어 미리 김칫국부터 들이켜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김칫국일까요. 맵고 짜지 않을까요? 여기서의 김칫국은 우리가 흔히 먹는 김장김치나 깍두기 국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박김치, 동치미 같은 김치들입니다. 이 김치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무’가 들어갔다는 것이죠. 무에는 ‘디아스타제’라는 소화효소가 있어서 전분을 매우 잘 분해시켜 줍니다. 무를 소금물에 담그면 그 소화효소가 국물에 배어 나옵니다. 그래서 떡을 먹다가 목이 메거나 체하지 않도록 무가 든 국물김치를 먼저 마시는 것입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앞집 처녀 믿다 장가 못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앞집 처녀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로만 생각하다 다른 데 시집가버리고 나서야 뒤늦게 ‘새 된’ 자신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위주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택시 기사가 길을 잘 모르면 미안해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게 손님을 태우는 자세니까요. 그럼에도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허튼 ‘봉사료’를 기대합니다. 늘 그렇지만 착각은 언제나 자기 안에서만 자유롭습니다. 지금 막연히 기대하는 게 있나요? 냉수 한 사발 하실래예?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