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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왜냐면] 설민석 강사는 3·1혁명을 왜곡하지 마라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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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스타 강사’ 설민석씨의 역사 강의는 시민들의 역사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한다. 하지만 일부 표현이 지나치거나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3·1운동(혁명)과 관련해서는 독단과 왜곡이 심하다. 본인의 주장대로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팩트만은 사실적이어야 한다.

설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 한 태화관은 중국음식점 명월관의 지점으로 한때 이완용이 살았던 집을 수리하여 변용한 것이다. 민족대표들이 3월1일 태화관에서 낮술을 먹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고 선열들에 대한 모독이다. 손병희 등 민족대표 29인이 참석하여 한용운의 인사말에 이어 ‘독립만세’를 삼창했다. 뒤이어 태화관 주인에게 일본 경찰에 알리도록 하여 달려온 일본 헌병 경찰 80여명에게 자동차로 연행되었다. 낮술 먹고 소리치다가 경찰에 전화해 “나 병희야, 취했는데 데려가” 운운은 황당한 픽션이다.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할 때 옆방에 ‘열혈청년’ 6인을 극비리에 잠복시켜 놓고 거사 일체를 기록하게 했다. 해방 후 유일한 생존자로서 〈3·1운동 비사〉를 간행한 이병헌의 기록에 남아 있다.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장소를 옮긴 것은 2월28일 손병희 집에 재경 민족대표들이 모여 흥분한 학생·시민과 일경의 충돌로 불상사가 생길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3·1혁명을 주도한 민족대표들은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3대 원칙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7500명 사망, 부상자 1만5800명, 구속자 4만6300여명의 희생을 치렀다. 파고다공원에서 맞붙었다면 일제가 3개 대대 병력만 동원했어도 참가자들이 모조리 학살되고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폭력 시위였기에 전국에서 1542회의 시위와 220만명의 시위 참가라는 세계 혁명사의 기록을 보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에 정규군 2만3천, 헌병 경찰 1만4천, 총독부 관리 2만1천 등 무장한 8만여명을 갖고 있었다. 일제의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으로 조선인의 손에는 산짐승이 날뛰어도 처치할 총기 하나 없는 형편이었다. 천도교에서는 한때 무장항쟁을 목표로 장총 10종과 총탄 200발을 준비했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바뀐 것이 3·1혁명이다. 전술전략의 변화였다.

설씨는 3·1항쟁에서 도쿄 2·8학생 지도부가 국내에 들어와 민족대표들을 만나자 쥐구멍을 찾듯이 얼굴이 빨개졌다는 등 과도한 표현을 쓰고 있다. 2·8이 3·1혁명의 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함께 몇 갈래의 흐름이 접목되었다.

천도교에서는 천도구국단을 중심으로 1918년 1월부터 민중봉기를 준비하고, 1919년 2월 초 상하이에서는 여운형 등이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일부는 국내로 들어와 지도자들과 거사를 논의했다. 비슷한 시기 만주에서는 해외 독립운동가 39인 명의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3·1혁명은 이와 같은 흐름에서 촉발된 거족적인 항쟁이었다.

1920년대에 3·1혁명의 민족대표 대부분이 친일로 돌아섰다는 설씨의 발언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다. 민족대표들은 극심한 고문과 심문으로 반주검이 되었으며 양한묵은 옥사하고 박준승은 고문으로 숨졌다. 손병희는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얼마 후 서거하였다. 다른 민족대표들은 출감 후 끈질긴 일제의 감시, 유혹과 회유를 받으면서도 신념을 지켰다. 몇 사람의 훼절자가 있었을 뿐이다.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3·1혁명은 대한민국의 근원이다. 민족대표들은 사형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선언에 나섰고 민중을 일깨웠다. 100주년을 앞두고도 정명을 찾지 못한 3·1혁명을 폄훼하거나 그 지도자들을 욕보여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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