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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박철완의 IT 정담] '공장형 연구실'에서 '가짜석학'이 기술입국 만든다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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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

이공계 쪽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장형 연구실'이란 표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단순히 실험실 규모만 놓고 그러는 게 아니라 운영 방식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대개 공장형 연구실이라 핀잔듣는 곳은 '가짜 석학'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단 공장형 연구실 소리 듣는 곳은, 실험실을 거쳐가는 학생들이 지도교수와의 연구 관련 접촉 자체가 현저히 작다. 그리고, 언론이나 학외 평가는 '석학' 운운하고 연구실적 자체가 양이나 질이나 상당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런 '객관화된' 평가를 믿고 진학을 하고 오래지 않아 현실을 직면한다.

여기가 말로 듣던 공장형 연구실이구나.

중요한 건 실적이고, 내실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국외 대가들이 논문 교신 저자로 등록되어 있다. 지난 논문의 재현성은 함구해야 하고 그게 바로 연구란 거다라 하고 배운다.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에 있음에도 '술어집', '용어집'이 따로 있다는 건 모른다. 그냥 사람들과 은어마냥 약자로 이야기하는 게 익숙해진다.

지도교수님을 본지는 오래고, 박사과정 선배는 직장 상사다. 여긴 학습과 수련의 공간이 아니라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곳이다.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고 혼자 공부해야 한다. 차라리 타 대학교 교수님이나 업계 전문가 분들께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뭐, 이래도 세계적인 랩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졸업 후에 가질 것이고 나도 후배들이 들어오면 지금 선배 마냥 하면 된다. 나 혼자 좌충우돌하며 뽑는 연구결과가 멋지게 포장되고 선배들과 옆 실험실 교수님과 사람들, 세계적인 대가의 공동 연구로 잘 버무려져 IF 20 이상 세계적인 저널에 곧 나갈 듯 하다.

그래도 난, 기여도가 같은 제1저자를 받았다. XM은 혼자 갖은 고생을 하고도 공동 저자로 끝났다. 선배 중엔 자기가 다 하고도 논문과 특허에 이름도 안 오른 이도 있고, 그림 두 장 편집하고 제1저자가 된 전설적인 선배님도 있다라고 아이들은 자위한다.

공장형 연구실의 하루를 가상적으로 묘사해 보았다. 실상은 조금씩 다르고 개성적인 특성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공장형 연구실은 박사과정이 되는 순간 실험실 출입은 끝나고, 늘 석사들이 생산한 실험 데이터로 논문을 생산하기도 하니 각양각색이다.

올해도 세계 대학교 평가 순위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교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특히 특정연구기관 몇몇은 몇년 째 굳건한 실적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석박사 과정을 거쳐 산학연으로 진출하여 기술보국, 기술입국의 기치를 여전히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학계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일 수 있는데, 우수 인력이라 꼭 그 연구실이 아니라 다른 연구실, 혹은 유학을 가서 얼마든지 능력 있는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거냐? 아니면, '공장형'이긴 하지만 논문 생산 공장을 거쳐서 능력 있는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냐는 논쟁이다.

사실, 제법 많은 연구자들이 학교로 이직할 때 학교 수준, 즉 학생들의 수준을 많이 보는 건 사실이다. 100점을 만점으로 볼 때, 70~90점 짜리 아이들이 넘쳐 나는 일류대로 가서 공장형 연구실을 차려 양과 질이 뛰어난 실적을 '양산'하고 제자들을 배출하며 석학의 위세를 드높이는 게 많은 연구자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세상은 70점 짜리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0~70점 짜리 아이들도 수두룩하다. 아니, 외려 이들이 우리가 보는 '보통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 30점 짜리 아이들을 차근차근 기초를 가르쳐 50점이 넘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그리고 필자의 페친 중에도 실무능력이 출중한 분이 있지만, 이런 분들이 뒤늦게나마 좀 더 깊은 공부와 연구를 해보고 싶어도, 전세계 연구 트렌드가 '어린 우수 인재들을 활용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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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우수 인재들의 블랙홀인 '공장형 연구실'이 OECD 및 주요 비 OECD 국가의 GDP 대비 국가 R&D 자금(위의 표와 그림)의 집중 수혜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공장형 연구실'을 국가가 지원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기업이 지원하는 게 맞는지에 관해, 필자의 입장은 후자를 견지한다. 왜냐하면, '공장형 연구실'은 언제나 자신들의 연구 결과는 노벨상도 가깝고 손쉬운 양산도 된다고 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뛰어난 연구력을 갖고 있다면 기업에게 집중지원받고 국가 R&D에서 구태여 지원받을 필요성은 없지 않나 싶다('꾸준한 스몰 사이즈(Small Size) 연구'의 지속 가능성에 관하여).

글을 맺으며, 70~90점 짜리 우수 인재의 능력을 활용하여 실적을 뽑아내는 석학과 0~30점 짜리 인재들을 다독이고 가이드하여 50점 이상 인재로 거듭나게 하는 석학, 과연 진정한 석학은 누구인지 의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이가 진정한 석학이라 보이는가?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IT조선 객원기자 박철완 공학박사는 서울대 공업화학과에서 학,석,박사를 했고, 산업자원부 지정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센터 초대 센터장,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부단장급)로 책임 운영, 드렉셀대학교 초빙조교수, 박근혜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 네거티브 대응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교육부총리 정책보좌관 자문역을 지냈습니다. 저서로는 '그린카 콘서트'가 있으며 '에너지 소나타'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IT조선 박철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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