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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강천석 칼럼] 한국 대통령은 너무 위험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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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법·제도 아래 새 대통령 無事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

藥도 되고 毒도 되는 '충성 집단' 兩面性에 눈 떠야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한국 대통령은 위험한 직업이다. 1980년 이후 대통령 자리를 거쳐 간 일곱 사람의 운명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두 사람은 감옥에 갔다. 한 사람은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로 전 대통령은 며칠 후 검찰에 출두한다. 헌법재판소 탄핵 사유와 검찰 수사 대상 혐의가 상당 부분 겹쳐 있어 법망(法網)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곱 사람 중 네 사람이 범죄자 신분이 됐다면 57%다. 문명국가에 이런 직업이 달리 있겠는가.

네 분의 대통령이 더 있다. 두 사람은 내각책임제 또는 과도기 대통령이라서 제외해도 될 듯싶다. 나머지 두 분에겐 독재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한 분은 50년 동안 이역(異域)을 떠돌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나 태평양 가운데 떠 있는 망명지(亡命地)에서 눈을 감았다. 또 한 분도 자기 발로 청와대를 걸어 나오지 못했다.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다. 결국 9명의 대통령 중 6명의 인생이 온전치 못했다. 불행이 대통령을 덮칠 확률이 67%에 달한다. 무사하려면 요행(僥倖)을 바라야 한다. 선진국도, 후진국도 여기 비길 사례(事例)가 없다.

위험한 직업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게 소방관이다. 한국 대통령이 불행해질 확률은 소방관의 부상률보다 몇 배 높다. 앞서 9명의 대통령 역임자 가운데 불행을 모면한 건 3명뿐이라 했지만, 이 말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세 대통령은 재직 중 자식이나 형제가 감옥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대통령 누구도 비극을 비켜 가지 못했다. 이런 무서운 운명, 이런 소름 끼치는 법칙의 지배를 받는 권력자가 어디 있겠는가.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의 폐해가 논란이 되고, 권력 분산형 개헌 주장이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을 만하다. 대통령은 장관·차관급은 물론이고 민정수석·인사수석을 통해 각 부처 국장급 인사와 공기업 인사 그리고 포스코 같은 민간기업이나 금융계 인사를 좌우한다. 감독 권한 인허가 권한, 수사 지휘권이 무기다. 민정수석이란 파이프로 검찰·경찰에게 수사 대상과 방향을 흘려보내고 정보기관엔 경계 인물 동태(動態) 파악 눈짓을 하고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목을 조이는데 버틸 도리가 없다. 권력 집중은 언제나 대통령을 가두는 덫이었다. 새 대통령이 이런 헌법·법률·제도의 관성(慣性) 아래 온전하기를 바라는 건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데도 무사히 착지(着地)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역설(逆說)은 이렇게 임금님 같은 대통령이 국정(國政) 최우선 목표조차 법률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권력 분산형 개헌론이 '제왕적 대통령의 무능(無能)'이란 역설의 매듭을 풀지 못하면 국정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릴 위험이 따른다. 최종 의사 결정 방식으로 다수결(多數決) 원칙을 배제해버린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전망이 더 어둡다. 협치(協治)라는 말을 합창하지만 협치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솟아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쯤에서 한국 정치에서 '충성(忠誠)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충성 집단을 거느린 대통령이 두 사람 있었다. 한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됐고 나중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진(自盡)했다. 또 다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罷免) 선고를 받고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왜 충성 집단이 대통령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을까.

충성 집단은 대통령에게 양날의 칼과 같다. 웬만큼 나쁜 정치를 해도 지지를 쉽게 거둬들이지 않는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대통령이 비틀거려도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복구의 시간을 벌어준다. 충성 집단이 약(藥)이 되는 상황이다.

반대로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충성 집단들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잘못됐을 때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사람들 이마에 '배신'과 '반역'의 도장을 찍어 봉쇄한다.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警告燈)을 꺼버리는 행동이다. 대통령이 충성 집단에 기대는 정도가 클수록 국민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러다 급작스럽게 침몰(沈沒)의 순간을 맞는다. 보수 정당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재건의 계기를 붙들려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여러 대통령이 반대 집단을 관리하는 데 실패해서가 아니라 충성 집단의 독성(毒性)을 가볍게 다루다 뜻밖의 종말(終末)을 맞았다. 탄핵에서 선거 국면으로 무대가 바뀌어도 끊이지 않는 '부역(附逆) 세력 처단' '무슨 세력 대청소'라는 소리를 가볍게 흘려보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있고 다음 날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총알 열차 속도의 정치 시간표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를 이렇게 뽑아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든다. 새 대통령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을 지배하는 운명의 법칙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가족에겐 또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몇 번이고 망설일 것이다.

[강천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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