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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소화기 쏘자 소방호스로 반격… 전쟁같은 서울대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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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해산으로 끝난 153일 본관 점거 사태]

교직원 400명 토요일 비상 출근

점거 학생 40명과 협상 결렬되자 본관 진입… 학생 한명씩 끌어내

학생들 재진입 위해 소화기 분사… 교직원은 소방호스 꺼내 물 뿌려

토요일인 지난 11일 오전 8시 20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본관 앞. 고층 건물의 외벽 작업에 쓰이는 고소(高所) 작업차 3대에 올라탄 서울대 시설국 직원들이 본관 5층 창문으로 향했다. 직원들은 창문을 하나하나 당겨보면서 잠겨 있지 않은 곳을 찾아 열려고 했다. 안쪽에선 본관을 점거 중인 학생들이 창문을 밀며 버텼다. 5층 진입에 실패한 직원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5층으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조선일보

지난 11일 서울대 본관 1층에서 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소화전으로 물을 뿌리고 있다. 학교 측은 이날 교수와 직원 400여명을 투입해 작년 10월부터 시흥캠퍼스 건설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하던 학생들을 몰아냈다. 총학생회는“학교 측이 물대포를 이용해 학생들을 진압했다”고 주장했고, 학교 측은“학생들이 소화기로 문을 부수고 분말을 분사해 소화전의 물을 뿌려 없앤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같은 시각 본관 1층에서는 서울대 교수와 직원들이 정문에 채워진 쇠사슬을 연삭기로 잘랐다. 밖에서 대기하던 교수·직원 400여명이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10일부터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 계획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점거한 본관을 153일 만에 교수와 직원들이 되찾는 순간이었다.

이날 서울대 본관 점거 해산은 '007작전'처럼 극도의 보안 속에 이루어졌다. 학교 측은 휴일인 토요일에 교직원들에게 비밀리에 출근령을 내렸다. 오전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시각에 박찬욱 교육부총장과 이준호 학생처장을 비롯한 교수와 직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시 30분이 되자 인원은 400여명으로 불어났다. 황인규 기획부총장과 신희영 연구부총장, 김기현 교무처장, 홍기현 사회과학대학장, 강대희 의과대학장 등 성낙인 총장을 제외한 주요 보직교수가 총출동했다. 당시 본관 안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학생은 40여명에 불과했다.

처음에 교직원들은 학생들과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이준호 학생처장이 나서 점거 학생들과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학생들이 해산을 거부하자 강제 해산에 돌입한 것이다. 본관에 진입한 교직원들은 1층에서 버티던 학생 30여명을 한 명씩 붙잡아 건물 바깥으로 끌어냈다. 학장과 부학장들이 자기 단과대학 소속 학생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직접 제자의 팔다리를 붙잡아 끌어내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학생 1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학생 여러 명이 찰과상을 입었다.

오전 9시쯤 교직원들은 학생 12명이 남아 농성하던 4층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모두 확보하고 사무실 집기와 비품 등을 옮기기 시작했다. 밖으로 밀려난 학생들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을 통해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화여대·한국외대 등 다른 대학 소속 학생들이 가세하면서 본관 앞 학생의 수가 50여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400명이 넘는 교직원들에겐 수적으로 밀렸다.

학생들은 교직원들과 욕설을 주고받으며 대치하다가 오후 3시 30분쯤 1층 민원실에서 로비로 통하는 문으로 재진입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교직원들이 문 뒤에 집기를 쌓아두고 학생들의 진입을 막았다. 일부 학생이 소화기를 집어 들고 문을 부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설치한 바리케이드 틈에 소화기 노즐을 밀어 넣고 로비 쪽을 향해 소화기 분말을 분사했다. 교직원 수십 명이 분말을 뒤집어썼다. 화재 경보가 울렸다. 흥분한 직원들은 1·2층 소화전에 있던 소방 호스를 꺼내 물을 뿌렸다. 이 장면을 두고 학생들은 "학교가 학생들을 상대로 물대포를 쐈다. 이게 대학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학교 측은 "학생들이 분사한 소화기 분말을 없애기 위해 물을 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대치는 11시간 만인 오후 5시 30분쯤 4층에 있던 학생들이 자진 해산을 결정하면서 끝났다. 총학생회는 "대학에서 일어나선 안 될 반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다음 달 소집될 학생총회를 통해 학교 측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화여대·홍익대 등 91개 학생·시민사회단체도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서울대학교 측을 규탄했다. 반면 학교 측은 "장기간의 점거 농성으로 학교 행정이 큰 차질을 빚고 있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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