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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단독] 서울대에 붙은 학생 대자보 "정치공학적 본부점거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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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대에 '서울대 일반 학우 1인으로서 본부점거본부에 고함'이라는 대자보 하나가 나붙었다. 실명을 공개하고 해당 문건을 작성한 공과대학 소속 학생 이 모씨(14학번)는 "민주적결정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본부점거본부(본점본)' 작태들은 현상의 비정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현실적인 대응책 없이 단순한 정치공학적 계산에 입각해 점거를 행할 것이라면 점거를 즉각 중단하라는 주장이었다.

학교측의 시흥캠퍼스 건설사업을 반대하며 시작된 학생들의 본관점거농성이 140일 넘게 이어지면서 학생사회 여론도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는 방증 가운데 하나다. 본부 점거를 비판하는 학생의 공개적인 목소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씨는 대자보에서 "두번의 전학대회에서 원안보다 많은 표를 얻은 '본부점거 해제 및 학교측과 타협안'이 학생들의 변화한 총의임을 받아들여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자신들의 이념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자 새 안에 찬성한 대의원들을 향해 고성을 지르고, 기명 대자보를 작성해 비난하겠다고 협박하는 그들의 모습에 아연실색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9일 1차 전학대회에서는 일부 강성 점거파 학생들이 "본관 점거해제에 찬성한 대의원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압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강압 내지 일방통행식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 발언은 '협박'이 아니라 표결권이 없는 일부 참관인들이 대표자를 향해 본인들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학생들은 두번에 걸쳐 각 학과 대표급 학생(대의원)들이 모이는 의결기구인 전학대회를 열어 점거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본관 점거가 장기화하면서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이어지고 있다. 6일 서울대 등에 따르면 이 학교가 추진하고 있는 학생 창업 프로젝트인 '크리에이티브 팩토리' 사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서울대는 지난해 5월 개소한 '창업가정신센터'를 학내 창업을 총괄하는 '헤드쿼터'로 만들기 위해 해당 사업을 추진해왔고 이를 위해 센터가 들어서 있는 건물 4층 전부를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상담) 공간, 코워킹스페이스(협업공간) 등으로 꾸미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면서 본관에서 일하던 교직원들이 쫓겨나다시피 이 건물로 옮겨왔고, 공사에 착수조차 못하고 있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해당 사업에 중기청 지원까지 확정된 상태인데 (점거가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매일경제는 이에 대한 총학생회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성낙인 총장은 지난 3일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 대학의 핵심 학생창업 사업이 좌초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행정부서들의 (본관)입주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더 이상 행정 마비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점거 학생들의 모임인 '서울대 본부는 점거중'은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 탄압, 자치 탄압에 이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본부에게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강경론을 펴고 있다.

[황순민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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