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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똥테러의 고통, 게거품으로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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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 장염 소동


한겨레

쩝. 쩝… 쩝. 터진 캡슐에서 흘러나온 가루약을 맛본 뒤 ‘게거품’을 물고 있는 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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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우우웅.”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아침이었다. ‘무슨 고양이 볼일 보는 소리가 사람 같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라미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얘가 뒤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뒷발로 그 똥들을 다 밟고….

함께 산 지 두달이 지났지만 볼일 본 뒤 뒤처리를 못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역시 고양인 듣던 대로 깔끔하고 영리하단 말이야.”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그대로 들고 화장실로 가 발을 씻겼다. 라미를 내려놓고 마루를 둘러보니, 희미하지만 선명한 ‘볼일’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지난밤에도 설사를 하고,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팔자에 없던 똥청소를 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4일 만에 다시 온 라미를 보자 의사선생님이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5일 전엔 한쪽 눈이 붓고 눈물이 났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린 것 같다는 진단이었다. 약만 잘 먹으면 곧 나아질 텐데 다시 병원에 왔으니 수의사도 놀랐던 거다. 지난 연말 차에 태우고 지리산과 경남 창원까지 다녀온 탓인 듯했다.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드글드글합니다.”

체온을 재고 변을 채취했다.(이렇게 쉽게 쓰지만, 까탈스런 고양이의 체온을 재고 변을 채취하는 건 그들에게도 집사에게도 수의사에게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장 속에 세균이 그렇다는 뜻. 장염이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고, 약 먹일 생각을 하니 그것보다 열 배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몸에 군살 하나 없는 벵골냥 라미는 졸릴 땔 제외하곤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올라갈 수 있는 덴 죄다 올라가고,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그런 애를 붙잡고 약을 먹이는 건 거의 ‘헬~’이었다.

“①뒷걸음치지 못하게 고양이를 양다리 사이에 두고, ②머리 뒤쪽에서 엄지와 중지로 양쪽 입을 살짝 누르면 고양이가 입을 벌립니다. ③그때 알약을 목구멍 깊숙이 넣고 입을 막으면 삼킵니다.”

참 말은 쉬운데…. ②를 하는 순간 라미는 집이 떠나가라 운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을 친다. 1.5㎏의 몸부림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힘이다. ‘내 입에 아무것도 넣지 말라’며 발톱을 잔뜩 세운 앞발을 휘저어댄다. 아무리 세게 붙잡아도 소용없다. 그러면 알약을 손에 쥔 난 마음이 급해진다. ‘조준’에 실패하면 라미는 무슨 독약이라도 먹은 듯 알약을 뱉어낸다.

출근은 해야겠는데, 약 먹이는 건 계속 실패하고, 발톱에 긁힌 상처에선 피가 나는데…. 순간, ‘아오, 왜 이런 건 (키우기 전에)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열이 확 받으려는 찰나, 터진 캡슐에서 흘러나온 가루약을 맛본 라미는 정말 말 그대로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쩝, 쩝, 쩝….” 똥테러의 혼란함과 약 먹이기의 괴로움과 상처의 아픔은, 모르겠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사람도 어릴 땐 방바닥에 설사도 하고 가루약 안 먹겠다고 발악도 한다. 쫄지 마라, 람냥. 내가 다 치워줄게. 잘 먹기만 해라.’

서대문 박집사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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