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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데스크의눈] 헛다리 방역과 行不 저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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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무관한데 연구용 포획… 멸종위기종 억울한 피해

지난해 저어새(Black-faced Spoonbill) 다섯 마리가 연구원들에게 붙잡혔다. 저어새 등에는 위치추적기(WT 300)가 부착됐다. 이들은 불편한 몸뚱이로 하루 수백㎞의 ‘생존비행’을 했다. 방역당국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예찰에 필요한 철새 이동경로 등을 조사하고자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를 덥석 포획했다. 작년 11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각지에서 창궐한 HPAI는 닭과 오리 등 역대 최대인 3300여만마리를 삼켰다. 그 바람에 사상 초유 ‘계란 대란’이 일었다. AI 사태 조기종식을 위한 실태조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한국생태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맡겨 각종 철새에 위치추적기를 달았다. 그런데 저어새는 AI에 걸린 적이 없다. 저어새 다섯 마리는 지난해 7월 초 번식지인 인천 강화와 옹진군 일대를 떠나 북한에서 서식하다가 10월에 중국과 대만으로 갔다. AI가 발병하기 시작하는 초겨울에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겨울철새가 아니다. 저어새는 여름철새여서 겨울에 기승을 부리는 AI 바이러스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1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저어새는 지구상에 3000여마리만 생존해 AI에 걸릴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AI에 감수성이 높고 개체수가 많은 겨울철새 대신 엉뚱한 저어새를 붙잡아 괴롭힐 이유가 없다.

세계일보

검역본부는 “저어새가 12시간 이내에 서해를 건넜고 매우 짧은 시간에 장거리 이동한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목적지는 대만과 홍콩 등지로 추정되고 일일 최장 이동거리는 700∼800㎞라고도 했다. 이미 문화재청이 2013년, 2014년 조사에서 확인한 것들로 새로울 게 없다. 저어새 한 마리는 행방불명 상태다. 검역본부는 멸종위기종을 지정·관리하는 환경부와 사전에 협의도 안 했다.

방역당국은 구제역 조사에서도 헛발질을 해댔다. 지난달 5일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방역당국은 전국 확산 가능성이 작다고 자신했다. 그 근거로 소 구제역 백신 항체형성률이 97.5%로 높다는 점을 들었다. 이 수치는 소 사육농가 9만8000여곳 중 7%(6900여곳)의 표본조사 결과다. 그것도 농장당 소 한 마리의 항체를 검사했을 뿐이다. 100마리 소 중 한 마리에서 항체가 나오면 나머지는 검사하지 않았다. 항체가 없으면 추가로 16마리를 검사하는 식이었다. 상당수 농장에서는 농장주가 검사할 소를 골랐다. 낮은 항체형성률은 백신 미접종을 의심받고 농가는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도 있다. 항체가 높게 나올 튼튼한 소를 택할 게 뻔하다. 구제역 걸린 소가 웃을 이 엉터리 조사 결과를 믿고 큰소리친 방역당국은 구제역 확산에 민낯을 드러냈다. 게다가 ‘골든 타임’까지 놓치면서 소 1400여마리가 살처분됐다.

방역당국의 조사 수준은 작금의 HPAI나 구제역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HPAI는 거의 매년 나타난다. 2014년 9월 발생한 HPAI는 260일이나 지속했다. 수천억원의 살처분보상금과 생계소득안정자금 등이 투입됐다. 구제역이 최초 발생한 2000년부터 올해까지 3조원 넘는 세금을 썼다. 후진적인 방역시스템은 부실한 ‘조사’에서 비롯한 측면이 강하다. 가축전염병 유입시기와 경로, 전파 매개체, 발생 농장 간 역학관계 등의 정확한 실태조사는 신속·정밀한 AI 방역대책의 출발점이다. 이에는 전문성 확보와 아낌없는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가축전염병이 휩쓸고 간 시골 마을에서 새벽녘 닭 울음소리, 얼룩빼기 황소의 게으른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고대한다.

박찬준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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