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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히말라야 1100km 도보종주 나선 '극강의 욜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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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마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히말라야에 가는 이유

중앙일보

네팔 그레이트히말라야트레일 종주에 나선 고영분씨. 종주를 앞두고 삭발했다. 130일동안 머리를 감을 수 없어서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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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서른아홉.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마흔. 머리를 바짝 깎고 이제 네팔로 간다. 비구니가 되려는 게 아니라 히말라야 1100㎞를 걷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삭발을? 걷는 130일 동안 감을 수 없기에 머리카락을 잘라냈을 뿐이다. 히말라야 8000m 14좌 봉우리 중 가장 동쪽에 있는 칸첸중가(8586m) 베이스캠프에서 시작해 에베레스트(8848m)를 너머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야말로 ‘아제아제 바라아제(가자 가자 건너가자)’다.

고영분씨는 혼자 원정대를 꾸려 2월 28일 네팔로 떠났다. 머리를 밀면서까지 산에 갈 이유가 있을까. 1993년 국내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지현옥(1999년 작고) 대장 이래 수많은 여성 산악인이 있지만 산에 가기 전에 삭발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산악인도 아니다. 2016년까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여성이었을 뿐이다. 그는 "왜 걷느냐"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 “생각해본 적 없어요”라고만 하다 거듭 묻자 “나에게 산은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답했다. PC통신 유니텔 시절부터 동호회 활동을 시작해 꼬박 20년 동안 산에 다녔다. 20대 중후반 수년간은 거의 매 주말 지리산에 살았다. 직장도 산에 가려고 열심히 다녔단다. “산악회에 들어가니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산에 다니려면 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애 상대도 주로 산에 다니는 남자였다. 아쉽게도 “산을 좋아하니 가슴이 넓은 남자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 쪼잔”했고 돌아섰고 그래서 혼자다. 이제 “남은 상대는 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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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네팔 돌파 지역 트레킹 당시 고영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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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며 여행을 즐기는 욜로(YOLO) 족 그 이상이다. “나에게 재산의 의미는 얼마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얼마를 쓰고 가느냐예요. 작년까지 열심히 벌었으니 이제 써야죠” 듣고 보니 억척 직장생활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생명에 취직했고 월급의 80%를 저축했다. 직장 다니며 야간에 대학을 다녔음에도 7학기 조기졸업하며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그간 취미는 오로지 등산, 해외여행은 직장인 17년차 되는 해에 일본 북알프스 등산이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네팔 트레킹 두번, 그러니까 지금까지 해외여행 경험은 세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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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장비점에서 중고로 각각 30만원대에 구입한 텐트와 침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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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일 트레킹 비용은 총 4000만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1일 30만원’꼴이라 황제트레킹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아주 빠듯한 비용이다. 1000만원 예비비를 제외한 실 경비는 3000만원, 그 비용도 대부분은 스태프 일당과 음식 재료 값이다. 개인 짐은 약 60㎏으로 최대한 줄였다. 이마저도 된장·고추장 등 한국에서 가져가는 부식을 빼면 얼마되지 않는다. 초경량 알뜰 원정대다.

그가 가려는 길은 국내에선 아직 완주자가 없는 그레이트히말라야트레일(GHT) 네팔 구간이다. GHT는 직선거리로 2400㎞ 뻗어있는 히말라야산맥 아래 해발 3000~6000m 길이다. 동쪽 부탄에서 시작해 인도·네팔을 거쳐 다시 인도·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유장한 길로 총길이가 4000~5000㎞에 달한다. 8000m 신들의 세계 아래, 사람이 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GHT 종주는 국내 내로라하는 산악인들도 걷고 싶은 길이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 국내에선 아직 네팔 1700㎞ 구간도 완주한 사람이 없다. 고씨는 지난해 540㎞를 걷고, 이번에 나머지 구간을 걷는다. 무사히 마치면 국내 최초가 된다. 130일은 최소한의 날짜다. 얘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한달 정도 더 걸릴 수 있다.

원정대는 가이드와 짐꾼 등 현지 스태프는 5~6명으로 꾸렸다. 혼자 네팔 남자 대여섯명과 함께 지내며 원정대를 이끌어야 한다. 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쓰는 이름은 ‘거칠부’다.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신라장군 거칠부. 단순히 “이름이 마음이 들어” 정했단다. ‘거칠 것 없는’ 여성이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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