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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증오발언 피해자 외면하는 현실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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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구제기금 설립 주도 재일동포 3세 문공휘씨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하지 않으니까 민간이 나선 거지요.” 특정 인종·민족·국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시위(헤이트스피치)가 일상화된 일본에서 문공휘씨(48·사진)는 차별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세우는 작업을 이끌고 있다. “인종차별을 당한 사람들이 소송을 내고 싶어도 돈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약자인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재일동포 3세로 오사카(大阪) 시민단체 다민족공생인권교육센터에서 일하는 그는 지역 단체들과 함께 인종차별 피해자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하다 6개월 전쯤 기금 설립에 나섰다. 문씨는 “기금은 피해자들의 소송을 돕고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는 데 주로 쓸 예정”이라면서 “피해자가 소송을 내면 이 기금에서 비용을 지원하거나 무이자로 대출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금 설립을 추진해온 단체들은 이사 선정과 법적 절차들을 마친 뒤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부터 기금을 운용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인종차별 구제기금이 설립되는 것은 처음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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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개인은 1000엔(약 1만41원), 기업과 단체는 1만엔(약 10만413원)의 기부를 받기로 했다”면서 “기금 목표 금액은 500만엔(약 5020만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헤이트스피치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물론 집을 얻거나 취직·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인종이나 국적을 이유로 차별을 받은 사람들도 지원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소송비용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이 분야 소송 경험이 있는 변호사도 소개해줄 계획이다. 피해 내용에 따라 적절한 전문가를 만나게 해주고, 상담비용도 기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당장은 오사카에서 살며 일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지원 대상이지만 필요하면 오사카 이외 지역 주민들도 도울 수 있다. 오사카시는 지난해 7월부터 헤이트스피치를 하는 단체나 집회 주최자 이름을 공개하는 조례를 시행하고 있지만 피해자 구제책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문씨는 “조례가 시행된 이후 오사카 시내에서 재일 한국인 등을 대상으로 한 헤이트스피치는 줄었지만 인터넷에서는 오히려 그런 공격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 조례 초안에는 헤이트스피치 등 인종차별에 의한 피해자가 소송을 낼 경우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최종안에서 삭제됐다”면서 “자치단체는 물론 정부에서도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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