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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기고]되살아난 ‘부인주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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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사법정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범죄사실이 분명하다는 데도 불구하고 범행을 부인하는 부인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경향신문

더욱이 변호사협회장이나 헌법재판관을 지낸 법률가들이 나서서 폭언을 하며 재판정의 권위와 위상을 전면 파괴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일반적으로 범인은 죄의식이 없고, 자신의 범죄행각을 부정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게 상례이다. 그래서 범죄 수사를 천직으로 삼는 직업이 생겨난 것이고 범죄심리학과 거짓말탐지기가 태동하였던 것이다. 원래 부인주의란 말은 독일 나치당의 600만명의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존재나 실체를 정면 부인하는 네오나치세력과 같은 부류들을 통칭하던 말이다. 한마디로 역사적 사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입장을 칭한다. 이 입장에 서게 되면 과학적 검증에 바탕을 둔 역사적 사건을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터키는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 학살을 부인한다. 그래서 이 부인주의 국가는 두 차례에 걸친 아르메니아 학살을 인정하는 모든 종류의 주장이나 표현에 대해 불법으로 간주한다. 2012년 1월23일 프랑스 의회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부인 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되었으며 터키는 이에 정치·군사 관계를 중단시켰다. 이행기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의 반공우익세력은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자행한 전쟁범죄에 대해 부인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한국에서도 반공우익세력의 일부 소수는 5·18민주화운동의 실체를 부인하다가 법의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은 법에 의해 처벌된다.

국정농단과 헌법 위반혐의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출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자기 변론권을 행사하는 대신 언론을 통해 사실을 부인하고, ‘엮였다’고 범죄사실을 모두 부정하였다. 그런데 대리인조차 이런 부인주의 입장을 반복하면서 법리나 증거 제시를 통해 무죄 주장을 하기보다는 여론정치를 하고 있어 의뢰인 대통령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자충수를 뒀다. 주목할 점은 이런 행보가 탄핵 결정이 패색으로 짙어가자 판세 불리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노골화되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탄핵이 인용된다면 국론분열과 세력 갈등의 원천으로 변질, 증폭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탄핵반대 집회에서 나타난 일련의 극단주의적 행태는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국가 위신이나 국격 유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나라의 장래나 현재 세대들이 지켜야 할 가치나 도덕, 윤리를 내세우지 못하고 정의가 실종되었다는 점에서 가짜 보수인 게 틀림없다. 국가안보를 미끼로 삼고 시민사회단체나 국민을 타자라고 지탄하며 매도, 규탄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가짜 안보세력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저항권을 발동하겠다는 말도 거침없이 내비치고 있다. 국민 협박이다. 사법정의를 짓밟고 정쟁 소재로 삼아 사회불안을 조장하겠다는 의도이다. 개인숭배와 이념적 극단주의가 잉태한 이런 부인주의와 사법정의에 대한 망발은 이 나라가 정상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정화와 반성, 문책과 징치를 통해 해소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사법정의의 확립 없이는 국민 희망의 미래정치는 찾아갈 길이 없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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