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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매거진M] 10편의 이탈리아를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feat.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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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의 문화탐구생활

알베르토 몬디입니다. 지난 1년간 magazine M에 칼럼을 쓰며 독자 여러분을 만난 것은 제게 큰 영광이었어요. 여러분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칼럼을 쓰려고 합니다. 이탈리아 영화에 대해서입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영화는 여전히 낯설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양국 국민성이 비슷하듯 영화에도 공통된 감정과 요소가 많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인 제가 한국영화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처럼, 이탈리아 역사와 사회·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 10편을 골라 봤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그간의 고마움을 듬뿍 담아.

중앙일보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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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탈리아 제목 | 감독 | 제작 연도

자전거 도둑 | Ladri di Biciclette | 비토리오 데 시카 | 1948
중앙일보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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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연출한 이탈리아 신(新)사실주의 명작. 많은 전문가가 최고의 이탈리아 영화이자 세계적 명화로 꼽는다. 전작 ‘구두닦이’(1946)의 흥행 참패로 신작에 대한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데 시카 감독은, 자신이 직접 ‘자전거 도둑’에 투자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왕정과 파시즘의 몰락으로 혼란스러운 이탈리아 사회를 가난한 자들의 시선으로 묘사한다. 가진 것 없는 아버지 안토니오(리아넬라 카렐)가 유일한 재산인, 도둑맞은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여정을 통해 던지는 인간 본질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물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충분히 와 닿을 만큼 보편성과 호소력을 지닌다.



지중해 | Mediterraneo | 가브리엘레 살바토레스 | 1991
중앙일보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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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는 이탈리아식 코미디다. “무언가에서 도망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헌정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삶의 우선순위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인 여덟 명이 사령부 설립을 목적으로 그리스의 작은 섬에 파견된다. 그들은 그 섬에 여자·어린이·노인밖에 없어서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본부와의 유일한 연락 수단마저 고장 나 외부 세상과 통신이 두절되자, 군인들은 서서히 전쟁의 의무를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지중해 섬에서 인간다운 삶을 즐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해변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삶의 덧없음을 독백하는 장면은,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장면이다.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일 포스티노 | Il Postino | 마이클 래드포드 | 1994
중앙일보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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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큼 제작 배경이 가슴 뭉클한 영화다. 1993년 이탈리아 국민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는 여자친구가 선물한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감명받아, 평소 친분이 있던 인도 출신 영국 감독 마이클 래드포드와 영화화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심장이 안 좋았던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급히 수술을 받게 된다. 그리고 수술 당시 발생한 심장 마비로 인해 심장 이식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는 심장 이식 수술 전 마지막으로 이 영화, ‘일 포스티노’를 촬영하기로 결정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영화를 자신의 심장으로 촬영하고 싶다”고 말이다. 원작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에 머문 시기를 주로 다룬다. 트로이시는 이 대목을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의 섬 판텔레리아와 살리나 그리고 캄파냐 지역의 섬 프로치다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특히 프로치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섬의 한 식당에서 특별 시사회를 갖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영화 촬영이 끝나고 12시간 후, 트로이시는 4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음악상·각색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음악상을 수상했다. 아름다운 풍광과 흥미로운 이야기에 트로이시의 연기가 어우러진 명작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 La Leggenda del Pianista Sull’Oceano | 주세페 토르나토레 | 1998
중앙일보

피아니스트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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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탈리아 작가의 글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짧은 독백조 글 『노베첸토』(원제 Novecento)에 나오는 이야기를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스크린에 옮겼다. 그가 영어로 만든 첫 영화다. 영국 배우 팀 로스가 태어나서부터 계속 크루즈 안에서 살아온 주인공 노베첸토를 연기했다. 노베첸토는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배에서 내린 적도 내릴 생각도 없다. 이 영화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노베첸토는 세상을 본 적 없지만, 세상이 그 크루즈 배를 드나든 지 30년 됐다. 그가 세상을 몰래 엿보고 세상의 영혼을 훔치며 30년이 흘렀다.” 노베첸토와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클레런스 윌리엄스 3세)의 피아노 대결은 전설적인 명장면. 엔니오 모리코네의 사운드 트랙이 이 아름다운 영화를 더욱 빛낸다.

베스트 오브 유스 | La Meglio Gioventu | 마르코 툴리오 지오르다나 | 2003
중앙일보

베스트 오브 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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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회·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접하는 방법은 이 영화를 보는 것이다. 원래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 RAI에서 4부작 TV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제5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영화로 먼저 개봉했다. 로마의 중산층 가족을 통해, 1966년부터 2003년까지 이탈리아 근·현대사를 가로질러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만한 작품. 상영 시간이 366분에 이르지만, 극의 흐름에 몰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호평받은 수작이다.

몽상가들 | I Sognatori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2003
중앙일보

몽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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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1987) 등으로 유명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작품. 히피 문화에 영향 받아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성(性)적 자유, 여성 및 노동자 인권 등을 외쳤던 68혁명 물결이 유럽을 휩쓸던 무렵의 이야기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미국인 매튜(마이클 피트)는 프랑스인 쌍둥이 남매의 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이들은 당시 급진적 사회 변화로 인해 늘 흥분해 있다. 영화에 푹 빠져 있던 셋은 스스로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여기며 온갖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다. 극 중 패러디 장면들은 베르톨루치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다.

천국의 속삭임 | Rosso Come Il Cielo |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 | 2006
중앙일보

천국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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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로 해외에서 인정받고 인기를 얻으며 한국·일본·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됐다. 나도 2009년 서울의 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보고 크게 감동받아,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영화로 손꼽게 됐다. 어린 시절 시력을 잃은 소년이 장애를 극복하고 영화 음향감독으로 성공하는 성장담인데, 이것이 현존하는 이탈리아 최고 음향감독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고모라 | Gomorra | 마테오 가로네 | 2008
중앙일보

고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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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고향인 캄파냐 지역의 동명 마피아에 대한 소설 『고모라』를 2006년 출판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 2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52개 언어로 번역돼 해외에서 10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이후 사비아노는 마피아의 보복을 피하려 경호원들과 숨어 살며 자유를 잃게 된다. 이 영화는 생명의 위협을 받던 와중에도 그가 젊은 감독 마테오 가로네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완성한 작품. 캄파냐 지역의 명품 브랜드 공장에서 벌어지는 불법 노동 착취 문제, 마피아에게 월급 받는 가족들, 불법 쓰레기 처리 사업, 청소년 범죄 실태 등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고모라’에 담긴 마피아의 모습은 상상보다 더 잔혹하고 섬뜩할 만큼 현실적이다.

일 디보 | Il Divo | 파올로 소렌티노 | 2008
중앙일보

일 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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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일 디보’는, 1945년 정치 활동을 시작해 상공부·국방부·재무부·내무부 장관 그리고 일곱 차례 총리로 재임했던 이탈리아 정치인 줄리오 안드레오티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는 1991~1993년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라 불렸던 부정부패 추방 운동이 벌어진 시기에 집중한다. 그때 안드레오티는 마피아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조사받았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탈리아어로 ‘신’ 혹은 ‘신성한’ 등을 뜻하는 ‘일 디보(Il Divo)’는, ‘스핑크스’ ‘검은 교황’ ‘악마’ 등 안드레오티의 무수한 별명들 중 하나였다. 이 영화 개봉 후 안드레오티는 소송을 걸진 않았으나, “나쁜 영화이며 추잡한 짓”이라 비난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원래 안드레오티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사람인데, 그런 반응을 보인 것 자체가 긍정적인 일”이라 응수했다. 이 영화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정치인에 대한 전기영화인 동시에, 이탈리아 현대 정치계에 대한 통렬한 묘사를 담은 걸작이다.

그레이트 뷰티 | La Grande Bellezza | 파올로 소렌티노 | 2013
중앙일보

그레이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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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출세작. 젊은 나이에 쓴 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50여 년간 이탈리아 로마 사교계 유명 인사로 살아가는 작가 젭 감바르델라(토니 세르빌로)가 주인공이다. 극 중 주요 배경인 로마는 로마 시대 전성기의 영광으로 2000년 동안 이탈리아의 역사·문화적 중심지로 군림해 왔다. 이는 영화 속 감바르델라의 인생과도 유사하다. 그는 “내가 예순다섯 살이 된 후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하기 싫은 것을 위해 시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 말하며, 그동안 자신이 몸담아 온 상류 사회의 공허함을 사무치게 토로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언론·지식인·부유층 등 상류 사회 인사들이 모여 벌이는 파티 장면. 이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가치가 위기에 처한 시대를 비판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알베르토의 문화탐구생활’ 연재가 종료됩니다. 그동안 이 칼럼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알베르토 몬디. 맥주와 자동차에 이어 이제는 이탈리아 문화까지 영업하는 JTBC '비정상회담'(2014~) 마성의 알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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