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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SW칼럼] 한반도 역대 권력의 조력자 그들은 충신(忠臣)인가 아니면 역적逆賊)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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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은 집권 권력층과 조력자들의 국정농단에 이뤄진 결과다. 국가정사 전반에 걸친 국정농단으로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를 야기 시켰다. 국민들은 좌절감에 빠져있다. 이로 인해 국가위상 역시 추락했다. 법과 규범 그리고 사회의 상식이 통한 세상이 아니라 오르지 그들만의 국가였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이는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국가정책을 진행했다.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으로 이어졌으며 그들을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 원인은 대통령과 그 조력자들만 국가정사를 논하고 결정했기에 부정부패를 만들었고 심각한 국가위상의 존폐위기까지 왔다. 여·야 권력층과 조력자들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국민들을 양극화 시키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과거 우리 역사에는 권력자와 조력자가 여김 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권력을 탐한 역적이 되었는가! 아니면 충신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 과거 역사 속 권력층과 조력자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심층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문답으로 제시했다.

조선전기 한명회(韓明澮)는 세조(世祖) 수양대군(首陽大君)을 왕을 만든 조력자였다. 그의 계략(計略)에 넘어간 수양은 동생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충신 김종서(金宗瑞)를 죽이고 또 조카 단종(端宗)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숙청을 시켰다. 또 다른 조력자 신숙주(申叔舟)의 배신에 의해 사육신(死六臣) 등은 죽음을 당했다. 그는 임금 3대를 걸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리었다. 하지만 그는 두 번 죽음을 당한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관직을 추탈당하고 그 시체가 무덤에서 꺼내져 부관참시(剖棺斬屍)된다. 시신은 다시 한 번 토막 내어졌으며 목을 잘라 한양 네거리에 천하대역죄인 역적이라는 말과 함께 걸어졌으며 두 번 죽을 당한 종말을 맞이한다.

특히 한명회와 매우 유사한 현 북한 김정은 정권 조력자 김영남이 존재한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김씨 왕족을 걸쳐 권력을 쥐고 있는 실세이다. 그는 김일성 시기부터 지금까지 모든 연설문을 작성하고 낭독해 많은 사람들에게 김씨 왕족을 우상화시키고 있다.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과 형 김정남 그리고 여러 관부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거기엔 항상 조력자 김영남이 있다. 또한 그가 한반도의 통일에 있어서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는 한명회와 매우 유사한 역사의 행보를 하고 있다. 과거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반드시 최후는 한명회와 같은 인생길을 되풀이 할 것이라는 필자의 견해이다.

또 조선후기 정조(正祖)의 조력자 홍국영(洪國榮)이 있다. 그는 세손궁의 궁료(宮僚) 시절 때부터 정조의 총애를 받는다. 정조 즉위 후 부홍파(扶洪派)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권력을 쟁탈 후 세도를 부리다가 정사가 그의 손에 좌우되는 폐단을 주었다. 하지만 정조는 국가를 위해 공적이 있더라도 나라의 기강을 무너트린 조력자 홍국영을 파직시켰다. 이후 준론탕평을 앞세워 소론, 노론, 남인 등에서 준론파를 새롭게 영입했다. 기존의 외척과 노론 벽파를 평등화하여 모든 정사를 바르게 펼칠 수 있었다.

다음은 조선말기 고종(高宗)의 조력자 이완용(李完用)이 있다. 그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결정적이 되자 친일파로 변신한다. 어전회의에서 고종은 이완용 협박에 넘어가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을 맺은 후 대한제국 외교권과 주권을 박탈당한다. 또 그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사건을 빌미를 잡아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했다. 그로 인해 일제강점기 36년이라는 민족 암흑기를 맞이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민족말살 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치욕의 역사를 제공했다. 그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역적으로 기록되고 자손들 역시 역적의 후손으로 남는다.

그러나 반면 조선중기 유성룡(柳成龍)은 국가와 우리 민족의 충신으로 선조(宣祖)의 조력자였다. 류성룡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생이다. 그는 경(敬)사상을 통해 국가의 상무적 기풍과 주일무적의 심평체정을 얻었다. 그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기 직전 선조에게 인사가 만사이기에 인재등용을 잘해야만 국란이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선조로 하여금 군관인 이순신(李舜臣)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했다. 그는 많은 신료들과 당론을 펼치면서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선조에게 진정한 충신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임진왜란에 4도 도제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 지휘를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종전 후 북인의 상소로 인해 영의정에서 스스로 관직에서 내려온다. 선조의 요청에도 관직에 가지 않는다. 그는 임진왜란 때 겪은 역사의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겼다. 그것이 ‘징비록(懲毖錄)’이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다. 즉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 중에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는 국가와 민족의 충신이었다.

하지만 해방이후 역대 정부 초대 이승만 대통령 조력자 이기붕과 박정희 대통령 조력자 차지철도 역시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과 조력자들 역시 최후는 좋지 않았다.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를 하여 모두 옥살이 면치 못했다. 과거 정치사를 보면 국가관과 민족정체성이 보인다. 만약 권력자와 조력자가 절대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려고 한다면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민들의 이념을 흔들고 큰 피해를 준다. 반면 모든 것을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이 제일 우선이면 충신으로 남는다. 이는 충신과 역적인가는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이 정신이 있는가! 아니면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기 위해 부정부패를 하고 있는가! 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에게 역사는 많은 교훈을 준다. 권력층과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국가관과 민족관의 역사 정체성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야의 바른 통합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등 국가정사를 펼쳐야 한다. 이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또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애국애족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다음 정부의 집권 권력층과 조력자들은 이번 국정농단의 사건의 뼈아픔 역사를 교훈삼아 정파 이권만 챙기는 것보다 국민에 의한 국민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또 당리당략에 혈안보다는 국민을 무서울 줄 알고 국가정사를 하는 것이야 말로 부정부패와 국정농단 비극을 만들지 않는다. 만약 권력층과 조력자들이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를 되풀이 한다면 그 비극은 다시 국민의 심판의 화살은 그들의 심장으로 날아 갈 것이다.

송일훈 박사 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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