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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 (5) 100년간의 추적…인류를 전율케 한 ‘우주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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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의 발견, 그 작은 창대함

경향신문

중력파가 지구를 스쳐 지나는 순간 13억광년 떨어진 곳의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생긴 중력파가 지구를 스쳐 가다 지난해 2월 미국 과학장비에 검출됐다. 중력파가 검출된 것은 2015년 9월에 이어 두 번째였다. 중력파 검출의 과학적 의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데 있다. 아인슈타인은 100년 전 중력에 의해 주변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으나 중력파가 약해 당시 기술로는 검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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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광년을 날아 네게 닿기를/ 단숨에 가로질러 너라는 빛으로/ 나는 너를 공전하던 별/ 무던히도 차갑고 무심하게/ 널 밀어내며 돌던 별/ 너는 엄마와 같은 우주/ 무한한 중력으로/ 날 끌어안아 주었지/ 네 마지막 신호/ 불안하게 뒤섞여/ 끊어지던 파동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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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를 찾아낸 미국 워싱턴주 핸퍼드에 있는 라이고(LIGO) 검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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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환이 부른 느린 템포의 모던록 ‘10억 광년의 신호’ 가사 중 일부다. 중력파가 발견된 것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중력파의 발견은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는데 어느 가수에게는 노래를 만들 만큼 큰 떨림으로 다가갔던 모양이다. 2016년 2월11일 라이고 과학협력단(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LSC)은 ‘아인슈타인의 예측 이래 100년 만에 드디어 중력파 검출’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뿌렸다. ‘라이고(LIGO) 검출기가 충돌하는 두 블랙홀로부터 방출된 중력파 관측으로 우주를 향한 새로운 창을 열다’라는 부제도 달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자문을 맡아서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킵 손 교수는 “이 발견으로 우리 인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고 새로운 진리에 대한 탐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력파 연구 모임인 비르고(VIRGO) 연구단의 대변인인 풀리오 리치 교수도 “이번 발견은 물리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만한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과학자들은 왜 중력파의 발견에 이토록 환호했을까.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물체가 존재하면 그것의 중력에 의해서 주변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이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물체라고 하는 존재로부터 비롯된 중력에 의해서 조건에 따라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가 있으면 지구의 질량 크기와 중력장에 의해서 그 주변 공간이 휘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길 한복판에 서 있어도 내 주변 시공간이 나로 인해서 휘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질량이 아주 작은 나 같은 존재 때문에 휘어지는 시공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질량이 큰 별이나 은하 주변의 공간은 관측 가능할 정도로 휘어진다. 현대 천문학은 이런 모습을 지난 100년 동안 직접 관측해 왔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자연 속에서의 검증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견뎌내 온 것이다.

물체가 가속운동을 하면 주변의 공간이 휘어질 뿐 아니라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파동이 생긴다. 중력파라고 부르는 이 시공간의 떨림은 빛의 속도로 사방으로 전파된다.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중력파가 퍼져나간다고 말을 했지만 더 정확하게는 시공간 자체가 출렁거리면서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가속운동을 하는 어떤 물체에 의해서 휘어진 그 주변의 시공간의 출렁거림이 그 패턴대로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이것이 중력파다.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데 그 세기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그렇다면 물체가 존재하고 운동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중력파가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온 우주에 전파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숱한 중력파들이 있을 것이다. 지구 내부에서 시시각각 만들어지는 중력파들로 온 지구가 꽉 차 있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지구의 시공간이 시시각각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들은 거의 모두 관측적으로 증명되었다. 마지막 남은 예측 중 하나가 중력파의 존재였다. 그런데 드디어 그 존재를 직접 관측한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관측적 완성이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없을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왜 중력파를 검출하는데 과학자들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력파가 너무 미약해서 그것을 찾아낼 만한 감도를 갖고 있는 관측 장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중력파가 우리 눈에도 보일 만한 규모라면 이 세상은 혼동에 빠질 것이다. 사람이 걸어가면 그 주변의 시공간이 그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 보인다고 생각해 보라. 자동차가 지나가는데 그 주변 시공간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중력파가 나한테까지 전파되면서 내 주변 시공간이 또한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고 생각해 보라. 신나는 상상이지만 지금 같은 일상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구에서 포착할 수 있는 중력파의 세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아인슈타인 자신조차도 중력파의 검출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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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의 과학기술자들이 검출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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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의 존재는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이론적으로 이미 제안되어 있었다. 킵 손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강한 중력파가 발생할 수 있는 천체 현상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둔 덕분에 그런 현상을 지구에서 관측하기 위해서 어떤 감도와 정밀도를 갖고 있는 장비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장비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과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돈이 문제였다. 블랙홀과 블랙홀 같은 중력장이 강한 천체들 사이의 충돌 같은 현상에서 강력한 중력파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세기가 작아질 것이다.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중력파를 포착할 만한 장비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중력파를 직접 검출할 장비를 개발해서 관측을 시도한 1세대 과학자인 조지프 웨버는 자신이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관측 결과를 확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다. 정밀하고 안정성이 높은 중력파 관측 장비를 만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그 중심에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가 있다.

2015년 9월14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과 워싱턴주 핸퍼드에 위치한 두 대의 LIGO에서 중력파가 검출되었다. 이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마친 후 가동한 첫 관측에서 얻은 놀라운 결과였다. 분석 결과 13억 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서 태양질량의 36배와 29배인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중력파가 지구를 스쳐 지나가다가 이 관측 장비에 걸린 것이었다. LIGO는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건설한 중력파 관측소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이 프로젝트에 장기적으로 지원한 미국 과학계의 저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강력한 중력파지만 13억 광년이라는 거리를 전파해 오면서 극히 약한 시공간의 변형을 일으키면서 두 대의 LIGO를 차례로 스쳐 지나간 중력파가 검출된 것이었다. 과학자들조차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엄청나게 작은 시공간의 변화를 이 기기가 검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개선된 LIGO는 당시 발견된 중력파를 충분히 검출할 수 있을 정도의 감도와 안정성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구상의 다른 진동으로 생기는 파형과 LIGO 자체에서 생기는 중력파를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된 것으로 인정되었다. 가짜 신호를 걸러낼 수 있는 내외부적 점검 시스템도 충실하게 가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11일 공식적인 발견을 알리기까지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두 곳의 LIGO를 스쳐 간 중력파가 예측한 시간대에 다른 관측소에서 검출되면서 관측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1000명이 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협업을 통해서 중력파 검출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중력파의 발견은 과학재단의 장기적인 비전과 과학자들 사이의 협업과 그 열정을 뒷받침할 수 있었던 기술력과 검증 시스템이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가동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6월25일 두 번째 중력파 발견 소식이 전해졌다. 2015년 12월26일 검출된 또 다른 중력파를 정밀한 검증 작업 끝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관측 천문학에서 하나와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좀 비약하자면 두 번째 발견은 더 많은 다수의 발견을 예견하는 징후 같은 것이다. 역시 블랙홀과 블랙홀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력파가 지구를 지나갈 때 생긴 작은 시공간의 변형을 관측한 것이다. LIGO는 한 번 더 그 감도를 향상시킨 후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더 많은 중력파가 발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이 중력파 발견에 주어질 것이라는 예측과 기대는 빗나갔지만 노벨물리학상 제1후보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 중력파 발견 1년이 지난 지금 LIGO는 양자역학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자체적인 잡음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기술력의 극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더 많은 중력파 검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나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중력파 관측소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우주공간에 중력파 관측소를 건설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중력파를 발견해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다시 한 번 검증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력파의 원인이 블랙홀 사이의 충돌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블랙홀 관측은 주변의 천체 움직임이나 그로부터 방출되는 전자기파를 살펴보면서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하는 간접적인 방법에 의존해왔다. 이번에 중력파 관측을 통해서 블랙홀로부터 직접 나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중력파 천문학의 태동을 알리는 사건이 바로 중력파의 발견인 것이다. 전자기파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전자혁명이 일어났다면 중력파를 다루게 되면 시공간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시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지배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 미래가 어떤 세상일지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제 막 전자기파의 시대에서 시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중력파 시대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네 마지막 신호/ 불안하게 뒤섞여/ 끊어지던 파동의 끝자락.” 미세한 중력파의 끝자락의 관측이 인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필자 이명현

경향신문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 애독자였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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