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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비인륜적이고 비상식적인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싶었다” 위안부 피해자 연극 ‘하나코’ 작가 김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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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극 <하나코>를 집필한 김민정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연을 연극 대본으로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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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연극 <하나코>가 무대에 오를 즈음 두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정부의 검열 논란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였죠. 두 사건 모두 이 시대가 얼마나 반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가를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2015년 초연에 이어 최근 대학로에서 재공연까지 마친 연극 <하나코>(연출 한태숙·극단 물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초연과 재연 모두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하나코>를 집필한 김민정 작가(43)는 연극을 통해 비인륜적이고, 비상식적인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 ‘연극 창작산실 대본 공모 당선작’인 <하나코>의 2015년 초연을 앞두고 (문화예술 분야 작품을 지원하는) 창작산실 선정작들에 대한 정부의 검열 논란이 일었고, 저를 포함한 <하나코> 팀원들이 제작 거부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공연을 올리기로 했다”면서 “왜냐면, 우리처럼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무대’ 말고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국가 권력을 비판하고, 아직도 해결이 요원한 역사의 비극과, 그 비극을 외면하고 있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제3자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나코>의 주인공 ‘한분이’ 할머니는 어릴 적 꽃분이로 불렸지만, ‘하나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평생을 숨어 살아야 했다. 작품은 70여년 전 여동생과 함께 캄보디아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한분이 할머니가 소식이 끊긴 동생을 찾기 위해 끔찍했던 그곳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 현지에서의 짧은 여정과 함께 동행한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1997년 국내에 소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던 위안부 피해자인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 사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김 작가가 <하나코>를 구상한 건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을 다닐 때였다.

“연극원 재학 시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직접 만들어 전시한 엽서를 본 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어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서 당시 15페이지 분량의 대본을 만들었죠.”

단막극용 초고에 불과했던 <하나코>의 완성본은 결혼 후 아이 둘의 육아와 집필활동 병행으로 잠시 미뤄졌다. 그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증언집을 우연찮게 읽으면서 <하나코>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변영주 감독)나 수요시위 할머니들, 훈 할머니의 사례는 대본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양분이 됐다.

김 작가는 “재공연 대본에는 한·일 외교협정 최종합의 당시 철저히 배제된 할머니들의 울분, 작가의 입장에서 느낀 인간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담았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마찬가지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2014년작 <이혈(異血)>에서도 모순된 현실과 그 안에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인간의 존재를 어둡고 묵직하게 그려냈다.

2014년 8월 영화로 제작되며 그의 대표작이 된 <해무>는 각자의 욕심이 초래한 비극을 다뤘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밀항하다 어창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돈을 좇다 결국 파멸에 이르는 인간의 본성을 탄탄한 구성으로 엮어 호평을 받았다. <해무>는 2001년 10월 중국인 49명과 조선족 11명이 태창호에 숨어 전남 여수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질식사하자 선장과 선원들이 사망한 26명을 바다에 내다버린 ‘제7태창호’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2004년 데뷔작인 <가족의 왈츠>는 가정의 파국을 그렸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 땐 배우로 무대에도 서봤던 그는 “글쓰기가 천직”이라고 했다. 국문과 1~2학년 때 연극 동아리에서 배우와 연출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숫기가 없는 그에게 무대도, 전 스태프를 아울러야 하는 연출가도 체질에 맞지 않았다.

“글짓기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있어서 신문기자, 드라마 작가 등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마감을 해야 하는 부담감에 엄두가 나질 않았죠. 제가 원래 느린 편이라…. ‘속도감’에서 보다 자유로운 희곡이라는 장르가 저와 잘 맞았어요.”

데뷔 14년차인 김 작가가 지금까지 쓴 창작 희곡은 20여편에 달한다. 내년 3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갈애(渴愛)’라는 이름의 창작물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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