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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큰 죄를 지었습니다"…충북 구제역 첫 발생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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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 아들 "더 이상 확산 안 되기만 기도"

"소울음소리에 잠 깨…축사 둘러보면 허탈"

뉴스1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는 13일 오전 충북 보은군 가축시장이 잠정폐쇄 돼 있다. 방역당국은 충북 보은에서만 세번째 발생한 구제역에 간이검사 없이 구제역 의심 소를 즉각 살처분했으며 주변 다른 소도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2017.2.13/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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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ㆍ세종=뉴스1) 장동열 기자 =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아직도 가슴이 쿵쾅 쿵쾅거리고 (무언가에)쫓기는 기분입니다. 밤에도 소 울음소리가 들려 잠을 깨고…"

올해 첫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의 젖소농장 농장주의 아들 최모씨(39)는 21일 뉴스1과의 전화통화에서 “큰 죄를 지었다”며 최근 심정을 이같이 밝혔다.

최씨는 아버지와 함께 이 농장을 운영해온 젊은 축산인이다.

평화롭던 이들 부자의 농장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지난 5일 이 농장의 젖소 15마리에서 침흘림, 수포(물집) 등 구제역 의심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다.

다음 날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정밀검사 결과 구제역 바이러스 O형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이후 구제역은 전북 정읍, 경기 연천과 충북 보은 일대를 휩쓸며, 전국의 소 1414마리가 살처분 매몰됐다.

당연히 모든 책임은 이들에게 쏠렸다. “백신접종을 제대로 하지 화를 불렀다” “소나 잘 키우지 왜 해외여행을 다녀왔나” “소독을 제대로 안해 그렇다”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최씨는 “저희 농장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어떡하나, 감수해야지, 잘 버티고 있다”며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했다.

최씨 농장은 구제역이 터지기 전만 해도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철두철미한 사양관리로 2010년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 인증) 인증을 취득했고, 지난해 충북도 젖소 품평회에서는 그랜드 챔피언과 2등상을 석권했다.

이렇게 관리하던 소를 모두 땅에 묻은 최씨는 “정부에서 80% 보조금을 지원받지만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손해를 본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중간 정도의 소를 사와 다시 이번에 묻은 소처럼 키우려면 10년은 걸린다.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요즘 겪고 있는 후유증이다. 자식처럼 키운 소 195마리가 주사를 맞고 쓰러져 땅에 묻히는 광경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사료를 주던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축사를 서성이게 된다. 텅 빈 축사를 보고 현실을 깨닫지만 울컥울컥한 감정을 어쩔 수 없다”면서 “축사 불을 켜면 음산하다. 해만 떨어지면 기분이 이상해진다”고 심정을 밝혔다.

뉴스1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의 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농림수산축산부는 농장에서 사육하던 젖소 195마리를 모두 살처분 처리했다. 6일 군 장병들이 굴삭기를 이용해 해당 농장 옆 논에 살처분 한 젖소들을 매몰하고 있다. 군은 폭 6m, 길이 30m, 깊이 1.5m의 구덩이를 판 뒤 살처분한 젖소들을 호기호열 방식으로 모두 매몰한다.2017.02.06/뉴스1 © News1 김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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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발생이후 농장에서 고립됐던 최씨는 지난 15일에야 사실상 구금(?) 생활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이후 가족 외에 외부사람과는 만나지 않았다. 소독을 하지만 혹시 구제역 바이러스가 옮겨질까 하는 걱정에서다.

그는 “하루 종일 축사에서 보내다 밤늦게 보은 읍내 집에 가는데, 사람이 있으면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는다”며 “누가 같이 탈까봐 피하게 된다”고 했다.

이처럼 최씨는 보름 넘게 '죄인 아닌 죄인' 생활하고 있다. 이날 통화 중에도 소를 잃는 아픔에 대한 표현보다는 ‘죄인’ ‘죄송’ ‘고개를 못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 묻자 “그나마 다행인 건 보은에서 구제역이 잠잠하다는 것입니다. 제발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최씨의 기도처럼 보은에서는 13일 이후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되지 않고 있다. 방역당국은 21일까지 구제역이 생기진 않으면 ‘최악의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일 군내 모든 소에 대한 백신 접종을 마쳤는데, 항체 형성 마지노선이 21일이기 때문이다.
p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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