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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기술혁신 없이 노동시간만 줄이면 소득도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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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조직 전문가’ 김성수 교수, 노동환경의 미래에 대해 말하다

경향신문

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지난 1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성과연봉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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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엄청난 노동시간은 살인적이다. 지난달에는 세 아이를 둔 ‘워킹맘’인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일요일 새벽에 출근하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2004년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한국의 총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다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칼퇴근법’ ‘슈퍼우먼 방지법’ 등 노동시간 단축이 차기 대선의 주요 공약으로 부각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53)는 “노동시간 단축은 시대적 대세”라며 “10여년간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고 온 데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신세대들의 요구가 활발하고 저성장으로 기업의 일감도 예전만큼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기술혁신이 따르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시간만 줄어들면 소득이 감소할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여년간 기업의 인사조직 분야를 연구해왔다. 지난해에는 조직원의 성격과 기업 성과 간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해 미국 경영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일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줄였지만 여전히 OECD 3위 수준이다.

“그래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일하는 시간 감소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2000년대 초에는 한국이 1위였는데 3위까지 내려왔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보면 사회적 분위기도 상당히 차이가 난다. 노동시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소득유지가 관건이다.

“쉽지 않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소득을 유지하려면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연 10% 정도 성장을 하면 어떤 부문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지만 2~3% 시대는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심지어 상당 부문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다. 인구구조 등을 보면 당분간 저성장이 명약관화한 것 아닌가.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가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일하는 시간 축소는 안 좋은 쪽(소득 감소)으로 갈 수 있다.”

- 정부가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각론이다. 공공부문 사무직 직원은 개인보다 팀으로 움직이는데 이를 개인평가하겠다고 하면 평가가 쉽지 않다. 경쟁을 강조해 성과연봉체계가 가장 잘돼 있을 것 같은 미국 기업도 들여다보면 평가 단계는 비교적 느슨하다.”

- 미국 기업은 성과평가를 어떻게 하나.

“영업 등 특수직종이 아닌 직원 평가는 통상 3단계(예를 들어 A, B, C) 정도만 한다. 그것도 절대평가에 가깝다. 미국 기업의 85%가 그렇게 한다. 등급도 중간에 대부분 몰려 있는데 보통은 B를 주고 정말 우수한 소수만 A, 도저히 같이 못할 직원만 C를 준다. 4~5단계로 세분화해 상대평가를 하는 한국 기업들과 대조된다.”

- 의외다. 미국 기업들의 성과평가가 이렇게 느슨한 이유가 뭔가.

“직원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과평가는 동기부여를 위해 하는데 평가가 부정확하면 동기가 저하될 수 있다. 미국 기업은 해고가 자유롭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미국 기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어 세분화된 성과평가가 절실하지 않다. 반면 국내 기업은 직원을 해고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그 근거가 직원 성과평가가 될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기업은 직원들을 세밀하게 평가하려 하고, 노조는 반대한다.”

- 대리는 대리일만, 과장은 과장일만 하는 직무중심 인사체제(직무제) 논의가 요즘 나오더라.

“한국 기업은 입사해서 어느 정도까지만 하면 최소 부장까지 시켜준다는 심리적 계약이 있다. 매년 5~6% 성장할 때 가능한 계약인데, 저성장 혹은 역성장 시대에는 실행하기 어렵다. 저성장에 임금 압박이 심해지면 점차 직무제로 갈 것이다. 평생을 대리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 직무제로 전환이 빨리 될까.

“민간기업이 직무제를 언급한 지 10년이 됐다. 직무제로 전환이 빠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느리다. 하지만 저성장이 심해지면 변화가 빨라질 것으로 본다.”

- 직무제 도입이 더딘 이유는.

“혁신을 통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신생기업이 적기 때문이다. 네이버 같은 젊은 회사는 처음부터 직무제를 도입할 수 있고 적용하기도 쉽다. 하지만 삼성, LG와 같은 수십년 된 기업들은 그동안 누적된 기업문화가 있어서 새로운 인사관리제도를 전면 도입하기 부담스럽다. 대기업들이 직무제를 본격 도입하기 시작하면 확 바뀔 거다. 지금은 직무제를 도입한 기업들이 신생 벤처기업 정도라서 산업 전체 파급력이 약하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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