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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가치투자의 또다른 거봉, 어빙 칸이 중시한 덕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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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어빙 칸(Irving Kahn) /사진=CNN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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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122] 세계 최고의 투자자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일 것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버핏 이외에도 월터 슐로스, 존 템플턴 등 세계적인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레이엄의 제자들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세계 최고령 투자자였던 어빙 칸(Irving Kahn)이다. 85년 동안 주식 시장에서 활동한 그는 2015년 10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매주 3일씩 현역 브로커로 일했다. 1928년부터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했으니 세계 대공황부터 제2차 세계대전, 냉전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그의 삶이 역사적인 사건들을 관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5년 미국 뉴욕에서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칸은 입학한 지 2년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1928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플로어 트레이더 보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의 첫 투자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주식시장이 풍비박산 난 1929년 대공황 당시 오히려 돈을 번 것이다. 그해 6월 칸은 광산회사 '마그마코퍼(Magma Copper)'의 주식 50개를 300달러에 공매도했다. 4개월 후 대공황이 불어닥쳤고, 칸은 돈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그는 트레이더들이 계속해서 더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사들이는 걸 보고 주식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공영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다지 똑똑한 편은 못 됐다. 하지만 어린애라도 도박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초기 성공 이후 칸은 공매도가 아니라 저평가된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투자 전략을 바꿨다. 또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하는 방식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레이엄을 만나 가치투자에 눈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에서 일하던 칸은 한 트레이더가 시장보다 나은 수익을 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그 트레이더가 바로 그레이엄이었다.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에 감명을 받은 칸은 그의 제자이자 조수를 자처했다. 그는 그레이엄의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강의를 보조했고, '증권 분석(Security Analysis)' 집필을 돕기도 했다. 그레이엄에게서 배운 가치투자는 평생의 투자 철학이 됐다. 칸은 "나는 그레이엄에게서 투자 분석을 통해 50센트에 팔리는 1달러짜리 주식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그레이엄은 이것을 '안전 마진(margin of safety)'이라고 불렀고 이는 리스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칸은 1978년 드디어 자신만의 회사를 차렸다. 두 아들과 함께 세운 투자자문사이자 브로커 회사인 칸브러더스(Kahn Brothers)는 이후 1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지금은 그의 아들과 손자가 회사 경영을 맡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주식 투자 기법이 등장했지만 칸은 가치투자 철학을 버리지 않았다. 저평가된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단순한 투자 전략을 끝까지 고수한 것이다. 버핏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기업 주식에 초점을 맞춘 버핏과 달리 칸브러더스는 소규모 또는 중견 기업에 집중하거나 장외 주식시장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역으로 활동한 투자자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조언은 무엇일까. 칸은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내심을 꼽았다. 그는 "빠른 투자는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며 "느리게 투자하고 지식에 집중해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2014년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기업들을 공부해서 이 기업들이 4~5년 후 수익률을 얼마나 기록할지 예상한다"며 "만약 주식 가격이 떨어졌고 내게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낮은 가격에 주식을 더 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칸은 다른 투자자들을 보고 따라 투자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혼자 'No'를 외칠 수 있는 투자자가 되라는 조언이다. "나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라디오나 TV, 인터넷에서 떠들어대는 얘기에 귀를 닫으라고 충고한다.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군중의 움직임을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109세까지 장수하고, 죽기 직전까지 일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은 유전자에 있는 듯하다. 그의 형제들이 모두 100세를 넘겨 장수했기 때문이다. 칸의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각각 109세, 101세에 사망했고 남동생은 103세에 세상을 떠났다.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Albert Einstein College of Medicine)에서 이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들 형제가 콜레스테롤을 통제하고 알츠하이머와 심장병을 막는 CETP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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