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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문형표는 왜 나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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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구속 이후 사의를 밝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표가 22일 수리됐다. 늦었지만 당연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됐음에도 여전히 고액의 급여를 받으며 기관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도 있다.

한국인들의 노후자금 540조원을 관리·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문형표 이사장(61)이다.

문 이사장은 현재 ‘장기 휴가’ 중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시절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소환된 지난해 12월27일부터 ‘공가(公暇)’를 적용받았고, 지난 16일 구속기소된 이후로는 ‘연차’를 사용 중이다. 연차가 완전히 소진되는 다음달 8일부터 ‘결근’으로 처리된다. 그 이전에는 정상적으로 급여(연봉 1억3000만원)도 받는다. 문 이사장의 빈자리는 지난 3일부터 이원희 기획이사가 직무대행으로 일하며 메우고 있다.

경향신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정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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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이사장 자리가 공백 상태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현행 법규상 공공기관장을 임기전에 교체하려면 기관장 본인이 사표를 제출하거나, 법원에서 금고형 이상이 확정돼 당연퇴직하거나, 이사회에서 해임건의 요청을 의결한 뒤 임면권자(대통령)가 해임해야 한다. 문 이사장이 사표를 제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무난한 방법이지만 문 이사장은 아직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사표를 내는 순간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금고형 이상의 판결을 받기에도 재판절차가 많이 남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사회의 해임건의 뿐이다.

그러나 이사회 해임건의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공단이나 복지부 모두 문 이사장을 해임하려는 의지가 없다. 오는 24일 열리는 이사회에도 문 이사장 해임 관련 안건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사회 개최 일주일 전에 안건을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이를 추가할 방법도 없다. 다음 이사회에서 이를 다루려면 재적 이사 3분의 1(4명) 이상이 서면으로 목적을 명시해 제출한 뒤 소집을 요구해야 한다.

현재 문 이사장을 제외한 국민연금공단 이사진은 10명(상임이사 3명, 비상임사 7명)이다. 이 중 4명이 공단과 복지부 내부인사다. 또 2명은 한국 경총과 전경련 부회장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한국소비자연맹, 대한변호사협회도 들어가 있지만 숫적으로 열세다. 무엇보다 공단 이사회에서 해임건의를 통과시켜 올리더라도 현재 임면권자인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문 이사장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국민연금공단의 수장 자리는 계속 공백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업무에 ‘조기’ 복귀하더라도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공단 이사장 직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자진사퇴하는게 맞는데, 본인이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며 “그렇다고 찾아가서 권유를 하는 것도 부적절해 현재로서는 그냥 두고 보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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