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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Why] 연애 '안'할 자유를 외치는 비연애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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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만족하며 사는데 교제하라는 성화에 큰 부담"

관계에 대한 피로감 따른 결혼 지상주의에 대한 반발

조선일보

직장인 홍모(29)씨는 지난 한 달간 소개팅만 열 번 했다. 2년째 교제하는 사람이 없는 홍씨를 위해 회사 동료들이 주선한 자리였다. 하지만 홍씨는 "지난 열 번의 만남 중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상대를 대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가 모두 좋고 지금 내 삶에 만족하며 사는데 오히려 주위에서 성화였어요. 저 생각해 준다고 마련한 자리에 안 나가면 서운해하니까 나가긴 했는데 딱히 설레는 감정이 들진 않더라고요. 팀장님이 '연애 고자(연애 못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 아니냐'고 하는 날은 울컥했습니다."

대학생 양모(여·23)씨는 최근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 '당분간 연애 안 해요'라고 적고 주변에 '홀로 선언'을 했다. 양씨는 "남자 친구를 사귀다 보면 남자인 학교 동기와 따로 영화 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연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자유롭게 연애할 자유가 있다면 이를 거부할 자유도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성 친구가 없으면 낙오자 취급을 한다"고 했다.

청춘들이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비연애(非戀愛)주의자'라고 부른다. 2013년 비연애주의를 다루는 잡지 '계간 홀로'가 창간되면서 이러한 논의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 '연애하지 않을 자유'의 저자 이진송씨는 "비연애 담론은 연애 지상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결혼 지상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목소리와 움직임"이라며 "국립국어원이 정의한 협소한 '연애'의 정의(남녀 간의 열렬한 사랑)에 반하는 폭넓은 개념"이라고 했다.

정모(32)씨는 1년째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비연애주의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은 있니?' '결혼 언제 하니?'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 거니?'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며 "신입사원 때 매일 자정까지 야근하다가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맘껏 사랑할 수 있는 환경도 되지 않는데 연애와 결혼을 강권하는 사회에 반발심이 든다"고 했다.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3비(비연애·비결혼·비출산)'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모(여·30)씨는 "최근 행정자치부에서 가임기 여성 인구를 지역별로 표기한 출산 지도를 보고 경악했다"며 "여성을 잠재적 연애 파트너나 잠재적 '엄마'로만 보는 시선에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비연애주의자,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 동거하는 커플 등 사랑에 대한 관점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며 "하지만 연애에 따르는 경제적·심리적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는 사회 분위기가 비연애주의를 부추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은정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자기 중심적 삶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관계에 대한 피로감, 기존 연애 문화나 결혼 관습에 대한 반발 등 비연애 현상이 나타난 배경은 복합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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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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