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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오타쿠, <너의 이름은> 애니 역사를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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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너의 이름은> 미디어캐슬 제공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mifoco@hani.co.kr


요즘 아재들이 만화 영화를 본다고 합니다. 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나이든 남자 관객이 여자 관객보다 많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한겨레>가 씨지브이(CGV) 리서치센터에 의뢰해서 관객 비율을 조사해보니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너의 이름은>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20대 여자로 43.4%입니다. 이에 견줘 경쟁작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40대 남자가 51.3%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재들의 애니메이션’은 <너의 이름은>이 아니라 <모아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영화는 남자들의 애니메이션으로 꼽히게 됐을까요? 아마도 이는 남자들이 두 영화를 보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모아나>를 두번째로 많이 보는 관객은 40대 여자(40.4%)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는 40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보는 가족 영화입니다. 이런 성별 구성은 <쿵푸팬더>나 <인사이드 아웃>과 아주 비슷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20대 남녀 관람객이 43.1%를 차지했던 <주토피아>에 가깝습니다. <주토피아>는 초반엔 40대 비중이 높다가 나중에 낮아졌습니다. 어린이들이 영화 속에 깃든 성, 인종, 정치 풍자를 알아듣긴 어렵기 때문에 나왔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어른 관객들이 굳이 어린이들을 데려가지 않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통계를 전해준 씨지브이 극장 담당자는 “<너의 이름은>은 남자들이 첫사랑을 떠올리며 보는 영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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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에스엔에스에선 <너의 이름은>을 싸고 여혐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남자가 여자로 몸이 바뀔 때마다 가슴을 주무르는 등 가슴이 숱하게 강조되는데다가 여성성이나 여자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다는 불만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은 여혐 논란을 터무니없다고 치부했지만 실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 인터뷰에서 주인공 여자아이가 자신의 타액으로 술을 만드는 장면을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아이의 타액으로 만든 무엇이라는 것이 10대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페티시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감독이 10대 남자 위주의 페티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 위주의 판타지는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할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출판기획사 코믹팝 선정우 대표는 한국영상자료원 온라인 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세카이계(유약한 주인공이 파멸된 세계와 맞서는 내용)와 미소녀게임이라는 장르에서 출발한 작가임을 지적했습니다. 세카이계는 주로 10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10~30대의 남자 오타쿠들이 주요 독자인 서브컬처 장르입니다. 세카이계 만화들은 일본 상업애니메이션의 퇴행적 측면이라 할 미소녀를 대상으로 한 남성 위주의 판타지를 거리낌없이 활용하고 부풀립니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를 ‘미야자키 하야오 후계자’라고 하거나 ‘포스트 지브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감독은 대중적인 어법, 정치적·예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작가 세계 완결을 목표로 하는 스튜디오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으며 일본에서도 다른 계열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너의 이름은>이 이야기할 만한 이유가 있는 현상으로 지목됩니다. 선정우 대표는 미소녀게임 이야기의 특성을 가지곤 있지만 주인공들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이 작품을 “세카이계의 졸업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규모로 볼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다음으로 성공한 작품이 <너의 이름은>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미야자키 하야오 등 재패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사랑했던 세대들에겐 낯설거나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나루토> <원피스> <블리치> 등 2000년대 초반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시간으로 보고 자란 한국의 20대 관객에겐 친숙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이학후는 “오타쿠들의 퇴행적 어법은 일부 남아 있지만 서브컬처 출신의 감독이 소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정말 소통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오타쿠 세대가 발을 넓힌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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