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2 (일)

70년전 영화 `멋진 인생`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일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영화 `멋진 인생`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트-119]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은 요즘 신뢰가 화두라고 한다. 대규모 스캔들로 정치권부터 사법부, 재계까지 사회 각 분야 지도층이 신뢰를 잃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뛰어다닌 지도층을 보며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요즘 같은 때엔 자연스레 1946년의 고전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을 떠올리게 된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미국에선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영화다. 이 영화는 비즈니스 영화로 손꼽히기도 한다. 좋은 비즈니스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기업가의 모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베드포드 폴스(Bedford Falls)라는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 영화엔 두 명의 비즈니스 맨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아버지의 모기지(mortgage) 회사 '베일리 빌딩&론(이하 B&L)'을 물려받은 조지 베일리(George Bailey·제임스 스튜어트 분)로,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고 소형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을 한다. 다른 한 사람은 마을의 부를 모두 손에 거머쥔 은행가 미스터 포터(Mr. Potter·라이오넬 배리모어 분)다. 그는 악덕 자본가의 표본으로 허름한 슬럼가를 서민들에게 임대하고 높은 월세를 받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조지 베일리는 영화의 주인공이고, 포터는 악당이다.

자신의 꿈도 포기해 가며 베일리는 마을을 사유화하려는 포터에 맞서 싸운다. 아버지가 급사하면서 그는 세계여행과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수익도 안 나는 작은 회사를 물려받는다. 또 신혼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뱅크런(bank run)이 터지자 신혼여행 자금을 탈탈 털어 회사의 도산을 막는다. 그는 아버지가 해왔던 대로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고, '베일리 파크(Bailey Park)'라는 주택 단지를 만들어 이웃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포터가 B&L의 이사회를 움직이거나 뱅크런을 기회 삼아 B&L을 망하게 하려고 하지만 베일리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꿋꿋이 버틴다.

1940년대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베일리가 없고 포터만 있는 현실에 가깝다. 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집값은 평범한 서민에겐 너무나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월세를 내고 집을 빌린다. 월세가 높기 때문에 삶은 빠듯하고,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건 점점 현실에서 멀어진다.

주택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영화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포터는 B&L이 기업이 아니라 자선단체라고 비난하며 게으르고 불평이 많은 대중에게 주택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알뜰하게 저축해서 집을 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일리는 강하게 반발한다. 그렇게 집 살 돈을 모으려면 사람들은 다 늙어서 죽을 때나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인간답게 살 만한 집에서 일하고 살고 죽는 것이 그렇게 과분한 일인가?

이익보다 사람들을 돕는 사업을 한 덕분에 베일리는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고, 덕분에 위기에서도 벗어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일리의 삼촌 빌리가 실수로 회사 자금 8000달러를 잃어버리면서 베일리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한다. 회사가 문을 닫는 것뿐만 아니라 횡령죄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그는 거리를 헤매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에 초현실적인 요소가 포함되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그러나 베일리의 곤경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해 너도나도 나서서 돈을 모은다. 이웃의 삶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베일리를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는 한때 은행가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여러모로 동화 같은 부분도 많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주인공 조지 베일리에게 공감하게 된다. 그는 사업을 통해 독점 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사람들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또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위기가 닥치면 자신의 돈을 써서라도 이를 해결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에서조차 이 영화가 사랑받는다는 건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사람들은 양심적인 비즈니스를 바란다는 것 아닐까. 또 자신의 사업에 책임감을 갖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기업가를 바란다는 것 아닐까.

어떤 재벌 기업인은 불법 행위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고, 어떤 외식기업은 장기간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을 체불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우리는 어쩌면 포터보다 더한 부도덕한 기업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보다도 윤리적인 기업가의 존재가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김수영 지식부 기업경영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