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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지방대학 교수들 “우리는 영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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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차 교수 “신입생 유치, 내 할당량은 10명 이상”

24일 오후 찾은 전남지역 ㄱ대학 ㄴ교수(54)의 연구실. 인문사회계열인 ㄴ교수는 다음달 초부터 쭉 잡혀 있는 ‘찾아가는 입시설명회’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그렇듯이, 이 대학 교수들은 수시 1차 모집이 시작되면 신입생 확보를 위해 초긴장 상태가 된다. 신입생을 1명이라도 더 유치, 신입생 충원율을 높여야만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평가에서 ‘부실 대학’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ㄴ교수는 “아침에 동료 교수들과 ‘올해 농사도 한번 잘 지어보자’고 결의했다”며 웃었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본부에서 온 전화다. “디자인 물컵, 고급 수건, 가방, USB, 컴퓨터 마우스….” 마치 만물상 가게 주인이 도매상에게 물건 주문하듯 설명회 준비물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명색이 대학교수인데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신입생 유치 ‘영업사원’ ‘장사꾼’이란 말은 고상합니다. ‘인간(고3) 사냥꾼’이죠. 1명이라도 건지면 얼마나 좋은지….”

신입생 확보를 위한 지방대학 교수들의 노력은 처절하다. 지난 22일 대전지역의 50대 인문학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다. 이 교수는 학과 취업률이 오르지 않아 평소 큰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률은 신입생 유치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근래 ㄴ교수는 광주·전남지역 220여개 고교에 수백번 전화해 학교설명회 날짜를 잡아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겨우 70여곳에서 승낙을 받았다. 그는 “대학끼리 경쟁이 심해지면서 설명 기회조차 얻기가 쉽지 않다. 갈수록 지원율이 낮아지는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은 학생 모집에 사활을 걸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로 20년차 교수인 그에게 암묵적으로 맡겨진 학생 모집 목표량은 ‘10명 이상’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한 해를 빼고는 목표량을 달성했다. ‘영업 비법’도 있다. 우선 고3 담임들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열쇠다. 교사 생일 때 축하 케이크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평일 수업이 없을 때나 토요일엔 무조건 학교를 찾아 “한 명만 달라”며 불쌍한 표정을 최대한 지어야 한다. 학교 축제날, 수학여행 때는 찬조금도 보탠다.

“이렇게 몹쓸 일을 하네…”라며 한숨을 내쉰 그는 지난해 수시 2차 모집을 하면서 당한 수모를 털어놨다. 순천의 한 전문계고 교무실에 들렀을 때다. 교사들이 “금방 잡상인이 왔다 갔는데 또 왔다”며 쏘아붙였다. 그는 “신입생 유치에 나선 교수가 잡상인이 됐다. 자존심이 상해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때 좋은 시절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출석을 안 해도 된다”는 조건으로 대학 간판이 필요한 중소기업 사장이나 간부들 4~5명을 손쉽게 신입생으로 입학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목표량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당장 내팽개치고 싶지만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다. 대학 측은 신입생 유치 목표량에 미달할 경우 ‘감봉’ ‘학과 통폐합’ 등의 압력을 가할 것이 뻔하다. ㄴ교수는 연구실을 나서며 “고3 장사꾼으로 내몰리는 동료들끼리 ‘연구실에 좀 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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