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미인도가 진품이든 위작이든, 천경자 화백 예술세계엔 흠 안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검찰 ‘진품’ 결론 이후

경향신문

천경자 화백의 작품 기증으로 세워진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위작논란으로 묻힌 천경자 화백의 뜨거운 예술혼, 작품세계를 미술사적으로 조명해 한국 현대미술사에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다.”

25년이나 위작논란이 벌어진 고 천경자 화백(1924~2015)의 ‘미인도’를 검찰이 ‘진품’으로 결론냈다.

하지만 논란에 마침표가 찍어질지는 미지수다. 천 화백이 위작이라 밝힌 데다 그에 뜻을 같이하는 유족들은 추가적인 법적 대응 의지를 밝혔고, 위작이라고 강조하는 미술계 전문가들도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20일 만난 원로 화가·평론가·큐레이터·갤러리 관계자 등 상당수 미술계 전문가들은 “이제는 논란을 묻고 천 화백의 예술세계를 찾을 때”라고 입을 모았다.

경향신문

천경자 화백


“천 화백 유족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전제한 이들이 천 화백의 작품세계를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위작논란이 25년 이어지면서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천 화백의 성과가 철저히 묻히고 있어서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천 화백은 한국 전통채색을 새로운 어법으로 현대화한 작가”라며 “당시 여류 전업작가가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영역을 당당히 구축한 점도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작품세계 등에 대한 연구·분석이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 많은 사람들에게 천 화백이 위작논란 사건으로 기억되는 게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한국 현대미술사에 이룩한 천 화백의 큰 예술적 성과들이 위작논란으로 모두 묻혀온 형국”이라며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천 화백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원로화가는 이번 논란과 관련,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몰라보겠느냐’고 의문을 표시하는 게 일반적 상식”이라며 “하지만 논란이 지속되면서 천 화백의 예술세계가 잊혀지는 것은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작가로서 천 화백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역시 작가로서 제 작품을 몰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인도’의 위작 여부에 대한 내 의견은 없으니 오해 말라”는 그는 “제 경우만 해도 30~40년의 작품에 대한 진위는 관련 자료가 없으면 자신할 수 없다. 사람의 일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설사 ‘미인도’가 진품이라 하더라도 천 화백의 큰 예술세계에 절대 한 올의 흠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술계에는 진품이 위작으로 뒤바뀐 사례가 있다고 그는 소개했다. 2010년 저명한 서양화가 ㄱ씨가 자신의 작품을 “위작”이라고 밝혔다가 3년 만에 “진품”으로 번복했다.

이 사건은 2007년 경매사 측이 경매 출품작을 작가에게 감정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작가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며 캔버스 뒷면에 매직펜으로 ‘위작’이라는 글자까지 썼다. 경매사 측은 작품 훼손에 따라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고, 이후 작가 본인과 보험회사, 경매사 등 관계자들이 진위 조사에 나섰다. 2008년 결정적 자료가 발견됐다. 문제의 작품이 1976년 10월과 11월에 각각 부산과 대구의 갤러리 개관기념전에 출품된 카탈로그에서 확인된 것이다. ㄱ작가도 진품으로 인정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천 화백의 예술세계가 화제성으로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술계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미학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