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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손님들이 싫어해요” 박 대통령 사진 떼는 시장·식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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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들렀던 울산 남구 신정시장

2014년 찾았던 청주 삼겹살거리

충남 서산 철새 도래지 전시관도

대통령 방문 모습 담긴 사진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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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 방문 안내판의 얼굴 부분이 훼손돼 있다. [사진 울산제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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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 입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여름휴가차 들른 곳이다. 동구는 이를 기념해 지난 8월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대왕암공원 방문’이라는 안내판 2개를 공원 입구와 해맞이 광장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날 찾아간 공원엔 안내판이 모두 사라졌다. 동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대통령 사진이 훼손됐다는 얘기를 듣고 안내판을 철거했다”며 “방문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닌 만큼 다시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퇴진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전국 유명 관광지와 상가에서 ‘박근혜 흔적 지우기’가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다녀간 뒤 재미를 봤던 식당 주인들은 “대통령 마케팅은 끝났다”며 기념사진을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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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신정시장의 한 떡집은 손님들 성화에 박 대통령 사진을 뗐다. [울산=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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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여름휴가 코스였던 울산시 남구 신정시장의 상인들은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바빴다. 가게 문에 대통령 방문 기념사진을 붙였던 시장 내 한 떡집은 지난 12일 밤 사진을 제거했다. 대통령이 들렀던 과일가게 역시 이달 초 대통령 사진을 없앴다. 이 가게 사장 박모(54)씨는 “손님들이 대통령 욕을 하거나 ‘박근혜 사진을 붙여놓으면 과일을 안 사겠다’고 하는데 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구 달동의 한 조개구이집은 지난 3일 대통령 하야 같은 특단의 조치가 날 때까지 술을 원가에 팔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울산시 중구 태화강 십리대숲에 있는 안내판의 박 대통령 사진 역시 얼굴 부분을 뾰족한 것으로 마구 긁은 자국이 있었다. 십리대숲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정재근(27)씨는 “최순실 사태가 난 뒤로 ‘이곳이 대통령이 왔다 간 곳이 맞느냐’고 묻는 관광객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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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의 한 조개구이집은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술을 싸게 팔기로 했다. [사진 김영섭씨]




박 대통령이 2014년 7월 다녀갔던 충북 청주시 서문시장 내 삼겹살거리의 상인들도 대부분 벽에 걸어놨던 대통령 사진을 떼냈다. 대통령 사진을 걸었던 식당 9곳 중 8곳이 사진을 없앴다. 식당 주인 이모(62)씨는 “최순실 사태 이후 젊은 사람들이 와서 대통령 사진을 치워달라는 말을 자주 해 이달 초 떼고 다른 액자를 걸었다”고 말했다.충남 서산시 철새 도래지 교육·체험 전시관인 ‘버드랜드’도 본관·전시실 등에 전시했던 박 대통령의 사진 3점을 최근 치웠다. 사진은 지난 8월 4일 박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전시관을 둘러보던 모습이다. 버드랜드 관계자는 “최근 ‘박 대통령 사진을 왜 전시하느냐. 보기 싫으니 없애라’는 민원이 빗발쳐 할 수 없이 제거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인 여가문화 복지시설인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물리치료실에 걸려 있는 박 대통령의 사진도 사흘 전 철거됐다.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 23일 이곳을 찾아 노인들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빛고을노인건강타운 측은 박 대통령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이 2주 연속 0%를 기록하는 등 반발 여론이 심해지자 민원을 우려해 사진을 떼어냈다. 중소기업들도 박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2013년 정부에서 창조경제 대상을 받은 대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홈페이지에 있던 박 대통령 사진을 없앴다. 이 회사 대표 A씨는 “‘홈페이지에 박 대통령 사진을 걸어놔 득을 볼 게 없으니 떼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많아 홈페이지에서 지웠다”고 말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실물경제와 밀접한 중소상인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흔적 지우기는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바닥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청주시, 울산·광주광역시=김방현·최종권·최은경·김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김방현.최종권.최은경.김호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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