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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HOOC간다]7일간의 만삭체험기②…남자, 만삭워킹파더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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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모바일 온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아직 디지털 콘텐츠는 1도 잘 모르는 기자들이 일하는 미디어 랩 HOOC. [HOOC간다]는 평범한 소재에서부터, 희한한 대상까지, 색다른 관점과 디지털 문법으로 공감을 전하는 HOOC의 체험 콘텐츠입니다. 그 첫 번째는 1주일의 만삭체험에 나선 남편이자, 예비 아빠의 체험 이야기 입니다. >

[HOOC=서상범 기자]몰랐다. 내 몸 외에 10kg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또 몰랐다. 만삭을 하고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이렇게 눈물 나게 용기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미안했다. 만삭의 몸으로 회사를 다녔던 동료들을 멀뚱멀뚱 쳐다만 봤던 내 무덤덤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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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 10kg의 무게가 더해지면,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나도 모르게 허리 뒤로 손이 가게 되고, 걸음걸이는 팔자가 된다. 남편들아 만삭의 아내가 뒤뚱거린다고 놀리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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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0kg의 만삭 체험 장비를 하고, 1주일간 생활을 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5일의 업무를 진행했는데, 이번 만삭체험기 2편에서는 만삭 워킹파더가 됐던 경험을 전하려고 한다.

우선 출근 준비부터 하드코어였다.양말을 신는 간단한 동작도 볼록 나온 배 때문에 허리를 숙일 수가 없어, 다리를 꼬아야만 겨우 가능했다. 물론 기자는 임신을 하지 않고도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힘겨움을 겪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상이던 출ㆍ퇴근길은 비일상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졌다. 기자의 집은 마포구 공덕동. 회사는 용산구 후암동.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직행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한다. 또 집과 회사 모두 역세권이 아닌지라. 역까지의 거리도 꽤멀다.(여러분. 이래서 역세권이 좋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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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 험난함에 대해서는 순실씨와 그 분 사이의 인연의 곡절만큼, 이야기 거리가 많다.

이 부분은 <③대중교통 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힘겹게 출근을 마치고 회사 건물에 들어서니 한숨이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사무실은 약 100개의 계단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짧은 다리로도 한 번에 계단 두 개정도는 올라가곤 했었다. 그러나 만삭임산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

올라가는 것도 문제지만, 내려오는 것은 두 배로 힘들다. 우리 몸은 체중이 1kg 증가하면 무릎에 전달되는 실제 하중은 그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첫 날 만해도 견딜만했던 무릎은, 체험 3일이 넘어가자 비명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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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내리는 그 단순한 일이, 만삭임산부에게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도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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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보니 사무실에 올라오면, 퇴근 때 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은 물론,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 나는 하루에도 4~5번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보면, 만삭 임산부에게 사무실은 너무나 불친절한 공간이다. 먼저 자리에 앉으면 튀어나온 배가 계속 책상과의 도킹을 시도한다. 단순히 느껴지는 이질감 외에도 사각 모서리의 책상 끝은 아이에게 너무나 위험한 존재라서 내내 신경이 쓰인다. 사장님들은 임산부들을 위해 반드시 중앙이 곡선 형태로 들어간 책상을 구비해 놓으시라.

또 10kg라는 무게는 생리활동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만삭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아랫배 쪽이 불러오는데, 이 무게가 끊임없이 방광을 자극한다. 평소 하루에 1~2번이던 요의(尿意ㆍ오줌이 마려운 느낌)가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느낌에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실제 임산부들의 경우 자궁이 커지고 이로 인해 방광이 눌리면서 요의는 물론, 방광염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한다.

여기에 아주 간단했던 활동이 모두 힘겨워진다. 사무실의 콘센트는 모두 책상 아래에 있는데, 여기에 무언가를 연결하려면 튀어나온 배 때문에 가능할 도리가 없었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허리가 계속 아파와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다. 앞서 말했던 사무실의 100계단은 간단한 볼일을 보러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이런 상황에 무거운 물건을 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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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 밑에 있는 콘센트를 찾아 꼽는 일은, 말도안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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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적 신체의 불편함 외에도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적 신체의 변화 역시 만삭워킹맘에게는 힘겹다. 냄새에 민감해지고, 변형된 골반 때문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통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입덧의 경우 임신 초기에 심한 이가 다수지만, 만삭이 되고나서도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냥 힘들다. 평소에도 일하기가 힘든데, 배 속에 소중한 아이를 걱정하고, 신체적인 고통을 견디면서 일을 하라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특히 체험기간 중 마지막 3일은 잠을 잘 때도 체험 장비를 차고 누웠는데, 이게 진짜다. 잠은커녕, 똑바로 누워있지도 못해 밤새 뒤척이다가 쇼파에 앉아 30분을 잤다.(이 또한 <④일상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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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업무를 보다보면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아 휴직하고 집에 있고 싶다.” 물론 직장인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전후휴가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이를 온전히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이런 힘겨움을 겪는 만삭워킹맘들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으로 보장된 출산관련 휴가를 온전히 사용하도록 눈치 주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다. 당장 일할 사람이 없어서 만삭의 임산부를 힘겨운 싸움에 내버려두는 것은 도의가 아니다. 실제 우리 회사의 모 부장에게 만삭 장비를 잠깐 체험시켜드렸더니, 바로 나오는 반응은 “야 이러고 어떻게 회사에서 일을 하냐. 집에서 누워있어도 힘들겠다”였다.

그렇다. 가만히 숨을 쉬고 있는 것도 힘든데, 회사에서 눈치까지 줘서 출산 직전까지 일을 시키는 것은 가혹하다. 출산을 핑계로 경력을 단절시키는 것은 치졸하다.

이렇게 전쟁 같은 하루를 5일간 하는 동안, 퇴근을 하면 나는 그야말로 골아 떨어졌다. 회사 일에 이어 집안일도 하기 에는 내 몸이 너무나 고돼 버틸 수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아. 적어도 아내가 임신한 동안에는, 그 아내가 만약 부른 배를 잡고 회사까지 다니는 분이라면. 제발 집안일은 당신들이 맡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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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3편에서는 <만삭으로 대중교통 이용하기 편>이 이어진다.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의 응원을 간절히 기대한다.

관련기사=7일간의 만삭체험기①…남자, 만삭이 되다

<덧붙이는 말. 1편이 나간 후 정말 많은 분들의 공감과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남편도 꼭 시켜보고 싶다는 반응부터, 고생해줘서 고맙다는 응원 글까지. 독자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비판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고작 1주일 체험해보고 뭘 안다고 이런 기사까지 쓰느냐라는 반응이었죠. 맞습니다. 제가 체험한 1주일은 실제 예비 어머님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해의 노력을 조금씩 해나가고, 경험을 전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함이 너무나 많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ps. 저에게 군대는 다녀오고 이런 체험을 하냐는 분도 계셨는데요. 저는 2002년~2004년 8사단 수색대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습니다. 당시 사용했던 999k의 무게는 만삭 체험 장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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