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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돈보다 안보가 먼저… 美·유럽, 차이나머니 튕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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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반도체 업체 매각 재심사

美, 해군기지 옆 호텔 거래 취소

EU는 種子회사 신젠타 인수 제동

"기술 유출 우려 있고 안보 위협" 사기업 거래까지 적극 개입 추세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전 세계 기업들을 '블랙홀'처럼 삼키고 있는 차이나머니의 인수·투자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자국 내 국방·식량·전력망 등에 대한 중국 기업 투자가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독일 정부는 24일(현지 시각) 중국 반도체 투자펀드인 '푸젠(福建)그랜드칩투자펀드(FGC)'의 '아익스트론' 인수 승인을 취소하고 매각 재심사 작업에 돌입했다고 독일 일간 '디벨트'가 보도했다. 아익스트론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칩 전문 반도체 생산업체로 FGC는 지난 5월 이 업체를 6억7600만유로(약 83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마티아스 마흐니히 독일 경제부 차관은 "이번 매각이 독일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정보가 입수됐다"며 "다른 부처와 함께 정보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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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도 이달 중순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의 랜드마크인 '호텔 델 코로나도'를 중국 안방보험에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팔려던 계획을 무효화했다. 블랙스톤은 지난 3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스트래티직 호텔 앤드 리조트' 산하 호텔 16곳을 65억달러에 안방보험에 팔기로 했다. 다른 호텔 15곳은 인수 작업이 모두 끝났지만 호텔 델 코로나도는 미국 정부가 매각에 제동을 걸었다.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호텔 인근에 미 해군기지가 있다"며 군사 안보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자 블랙스톤이 호텔 매각을 철회한 것이다.

에너지·전력 등 국가 기간망에 대한 투자가 무산된 사례도 있다. 호주는 지난 8월 중국 국영기업인 국가전력망공사와 홍콩 최고 부호 리카싱(李嘉誠) 회장의 청쿵인프라그룹이 합작해 자국 최대 배전망업체 '오스그리드'를 76억달러에 인수하려는 시도를 저지했다. 외신은 "호주가 배전망업체 매각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걱정했다"고 했다. 영국은 최근 "중국 군수업체 참여로 영국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힝클리 포인트C 원전 건설 사업 승인을 두 달간 늦추기도 했다.

중국 국영 화학업체인 중국화공집단공사(CNCC)가 세계 최대 종자업체인 스위스 신젠타를 44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계약도 유럽연합(EU)의 반발과 우려에 가로막혔다. CNCC는 마감 시한인 지난주까지 EU에 독점 우려 해소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 미국 의회도 신젠타가 중국에 넘어가면 미국과 세계의 식량 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미국 시장은 신젠타 매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차이나머니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중반 이후 16개월 동안 서방세계가 중국의 투자를 좌절시킨 액수가 400억달러에 달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 보도했다. FT는 "투자 무산 사례는 대부분 안보와 (중국 정부의 불순한 개입에 따른) 경제 질서 파괴 우려가 제기됐던 거래들"이라고 말했다.

각국은 중국의 파상 공세에 맞서 자국 안보와 산업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보완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EU가 외국의 기업 인수 제지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영국 메이 총리도 외국 기업의 영국 투자를 철저히 심사하는 제도 도입에 착수했다. 데릭 시소스 미국기업연구소(AEI) 중국 전문가는 "중국 해외투자에 대한 국제사회 시선은 점점 걱정과 우려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미국도 기술 분야 등에서 중국 투자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국제시장에서 중국을 대신할 만한 '큰손'이 없어 중국의 인수·합병(M&A) 질주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런던=장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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