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피해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해 박범신씨는 "나이 많은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고, 박진성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함씨는 "깊이 사죄하고 후회한다"며 활동 중단 의사를 밝혔다. 개인적인 사과 표명 수준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창작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문인이나 예술가는 문화 권력자로 불린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피해자들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문인 등의 부적절한 행태가 문화계에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파문은 김현 시인이 지난달 한 문예지에서 문단의 만연한 여성 혐오나 성폭력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이후 불거졌다. 편집자나 작가 등 주변 인사들을 상대로 한 부도덕한 행각은 파렴치한 '갑질'과 다를 바 없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단과 예술계 내부의 깊은 자성과 비뚤어진 성문화에 대한 척결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문화계의 풍토는 한 사회의 지적, 도덕적, 정신적 위상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사고와 행동 방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대표적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이번 파문과 관련해 긴급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이다. 성추문의 당사자인 박 시인도 작가회의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폭로로 예술 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 모양인데 성추문 사안의 폐해와 심각성을 간과한 듯하다. 개인적 일탈에 불과할 수 있다는 등의 해명 따위를 내놓아선 안 된다. 시인 박씨의 시집을 낸 문학과지성사는 "참담한 마음으로 유감을 표명한다. 사실을 확인해 사회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말로만 그칠 게 아니다. 그간 알고도 모른 척 했다면 이번에 치부를 도려내고 문화계가 윤리적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