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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어느 퇴직자의 폭로'…"울산 관광버스 사고는 예고된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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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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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안정섭·박일호 기자 = "다른 버스는 운이 좋아서 사고가 안 났을 뿐입니다. 이번 사고는 예고된 참사입니다."

관광버스 운행 도중 화재로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울산 태화관광버스 회사에서 1년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모(36)씨는 지난 18일 오후 뉴시스 취재진을 만나 이 같이 밝혔다.

올 7월에 퇴사한 이씨는 "다시는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대형 사건이 재발해선 안 된다"며 지난 1년간 근무경험을 토대로 태화관광의 운영실태를 취재진에게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격앙된 표정의 이씨는 "태화관광에서 근무한 1년동안의 기억이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고 토로했다.

◇사고가 안생기는 게 이상 '부실한 차량 관리'

이씨는 출고된 지 5년된 기업체 출·퇴근 차량 운전자로 근무했었다. 그는 운전한 지 얼마 안돼 와이퍼가 가장 느린 속도로만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회사에 얘기했지만 "일단 기다려라"는 답변만 들었다.

이씨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앞이 보이지 않아 와이퍼를 수동으로 계속 조작하다 사고가 날 뻔 한 적이 있다"며 "4개월이 지나서야 같이 일하던 동료기사가 고쳐줬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장거리 운행을 하는 대형버스의 특성상 안전과 가장 직결되는 타이어도 늘 터지기 직전이 돼야 교체해 주는 회사였다는 것.

사고 운전자의 초기 진술처럼 운행 중 타이어 펑크는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타이어가 닳고 닳아 내부 철심이 드러날 정도가 되도 최소 한달은 기다려야 바꿔줬다"며 "회사에 정비사로 지정된 사람이 1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버스 운행에 투입되고 있어 만나기조차 어려웠다"고 부실 관리 실태를 강조했다.

이어 "올해 출고된 사고 버스를 출고 당시 장착된 타이어로 7만㎞ 가까이 운행했다면 분명 타이어가 상당히 마모된 상태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대형버스의 경우 출고 타이어로 3~4만㎞ 정도 운행하면 교체해 주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 뿐만 아니다. 차량 배터리가 주기적으로 방전되는 일이 있었는데 운전자을 보내 임시조치만 해주다 계속 항의를 하자 마지못해 중고배터리로 교체해 준 일도 있었다.

이씨는 "결코 기사들이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버스 상태가 아니었다"며 "회사는 부품 교체주기 3번이 지나서야 1번 교체할 줄 정도로 차량을 부실하게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버스 액세서리 취급받는 운전자

태화관광은 소속 운전자들을 대부분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한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그러나 재계약은 꿈조차 못꾸고 상당수가 입사 후 1년이 되기 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씨는 "회사는 입사 후 1년이 지나면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에 특히 민감해 했다"며 "신입 기사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1년이 되기 직전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고 회사를 떠났다"며 고개를 떨궜다.

운 좋게 재계약을 했다해도 3~5개월간 이른바 '쪼개기' 계약으로 연명하다 두 번째 퇴직금이 적립될 무렵이면 또다시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그는 "가을철 성수기에 기사가 부족하면 회사는 몇 달 전 해고한 기사에게 연락해 단기계약을 요구했다"며 "정년을 넘긴 고령의 기사들이 많은데 기사 수가 부족할 때마다 단기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해 노선을 이어간다"고 실상을 밝혔다.

이씨 역시 입사 11개월 차에 운행일정표에도 없는 배차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경찰과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겠다고 거세게 항의한 끝에야 한 달 더 일하고 퇴직금을 받아 나왔다"며 "회사가 기사를 버스 액세서리 취급하는 데 제대로 된 자격 검증이나 하고 채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사 안전교육은 인증샷용?

이씨가 1년간 태화관광에서 일하면서 받은 안전교육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정기교육이 아니라 울산지역 한 대기업 통근버스가 운행 중 사고가 나자 해당 기업체에서 "기사 안전교육을 철저히 실시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기사들 절반은 운행하느라 교육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별 내용없는 형식적인 교육이 진행됐고 회사 운영진들은 혹시나 대기업과 계약이 파기될까 두려워 기업체에 보낼 인증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이었다"고 비판했다.

정기적인 교육은 전혀 없었고, 신입 운전자에게 입문교육 대신 차량 열쇠부터 건네는 회사였다고 토로했다.

소위 '장롱면허'로 입사한 운전자는 동료로부터 운행 노하우를 하나 하나 배워 나갔다.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보니 일부 운전자는 배차 시간을 맞추려고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일삼아 이에 항의하는 민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땅콩회항쯤이야' 운전자 상대 갑질 또 갑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나 상대차량의 실수로 발생한 가벼운 접촉사고이지만 회사는 늘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보험처리 여부와는 별개로 차량 수리비의 3분의 1 가량을 기사가 무조건 부담해야 했다.

수리비 1000만원 이상의 대형사고가 나면 기사들은 어김없이 회사를 떠났다. 행여나 지각으로 배차를 놓치면 단 한 번의 경고 없이 회사가 정한 벌금 30만원부터 내야 했다.

운전자의 차량 정비 요구는 무시하고 자동차 생산공장 새벽조 출근차량부터 야간조 퇴근차량까지 하루 20시간 가까운 중노동을 시켰다.

단체손님이 관례상 전달하는 '기사 봉사료(팁)'도 회사 주머니에 들어갔다.

회사는 팁 10만원이 포함된 가격에 여행 계약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운행을 마치고 팁을 받았다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씨는 "당시 태화관광버스에서 일했을 당시 1년 경력을 채워 시내버스 등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는 20~30대의 젊은 기사들이 적잖았다"며 "그들은 어떻게든 1년을 버텨보려고 회사의 갑질을 묵인했고, 나이 많은 기사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참고 또 참았다"고 분개했다.

◇사측이 자초한 '예견된 참사(?)'

이번 사고를 보도한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사건 전말을 지켜본 그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도 느꼈다고 했다.

태화관광의 부실한 차량 관리행태와 운전자를 상대로 한 갑질 횡포를 절실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운전자 1명의 과실로 인한 사고로 보는 사람이 있지만 이 사고는 분명 회사측이 그동안 저질러온 악행의 결과물일 지도 모른다"며 "다른 버스들은 지금껏 운이 좋았기 때문에 그런 사고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고 피해 유족들의 주장처럼 업체 최고 경영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이번 참사를 계기로 태화관광 회사와 비슷한 행태로 운영되는 다른 버스업체들도 자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담담히 말했다.

이씨는 19일 이번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진 울산 울주경찰서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한편 취재진은 이씨와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사실 확인 차 18~19일 해당업체 측에 수차례 전화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앞서 지난 13일 밤 울산 울주군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부근에서 태화관광 소속 관광버스가 차선을 변경하던 중 도로변 방호벽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버스에 불이 나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던 승객 10명이 그자리에 숨지고 9명이 다쳤다. 특히 승객 대부분은 한화케미칼 퇴직자 부부 모임 회원들로, 사망자 가운데 부부가 3쌍이나 포함돼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yohan@newsis.com
pih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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