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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바흐’의 이름을 음으로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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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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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름으로 선율을 만든다?’

낯설게 들리는 일일까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사진)의 음악에 친숙한 분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은 얘기입니다.

서양음악에서 소리의 높이를 표시하는 ‘음이름’은 A(라)에서 G(솔)까지의 알파벳 일곱 글자만을 사용하지만, 독일어권에서는 유독 A-‘H’-C-D-E-F-G로, 영어에서의 B 대신 H를 씁니다. 옛 활자에서 H자가 B와 비슷하게 보였던 데서 유래한 관행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영어의 B♭(B플랫)음을 그냥 ‘B’로 표시합니다.

이에 따라 ‘BACH’라는 이름은 ‘B♭-A-C-B’라는 네 개의 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노년의 걸작으로 꼽히는 ‘푸가의 기법’ 마지막 부분에서 바흐는 이 네 음의 진행을 앞뒤로 뒤집고, 아래위로 뒤집는 등 다양하게 발전시킵니다.

이런 ‘이름놀이’를 즐긴 작곡가로 슈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악보로 출판한 첫 번째 작품이 ‘아베크(Abegg) 변주곡’인데, 이 작품의 주제는 제목처럼 ‘A-B-E-G-G’ 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작 따님인 폰 아베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역시 전해지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름을 이렇게 소리로 바꿀 수는 없죠. 음이름은 독일식으로 ‘H’까지 더해 보아야 고작 여덟 개의 알파벳 자모만을 사용하니까요. 그래서 1909년 프랑스의 음악 저널리스트 쥘 에코르슈빌이라는 사람이 이른바 ‘프랑스식’ 음이름 바꾸기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한 줄에 일곱 글자씩, A부터 Z까지 죽 써놓은 다음에 각각의 글자를 첫 줄에 대응시키는 방법입니다. 말하자면 두 번째 줄의 H에서 N까지는 첫 줄의 A에서 G까지에 각각 대응하니까, ‘KIM’은 ‘D-B-F’라는 음이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작곡가 라벨이 하이든(Haydn)의 이름을 이렇게 ‘B-A-D-D-G’로 바꾸어 ‘하이든 이름에 의한 미뉴엣’을 작곡했습니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백건우의 선물’ 콘서트에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프란츠 리스트의 ‘바흐 이름에 의한 판타지와 푸가’를 연주합니다. 글 앞에 소개한 ‘B♭-A-C-B’의 음 진행으로 바흐를 오마주한 작품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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