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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여혐·남혐 폭로로 맞서다…○○패치, 혐오의 진화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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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경찰의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여성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과 종로 일대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위터 `경찰 공정 수사 촉구 시위'(2standard-OUT) 계정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경찰이 여혐 사이트는 해외 서버라 수사를 못한다고 하더니 최근 강남패치 등 일반인 신상 폭로하는 인스타그램 운영자는 잇따라 검거하는 등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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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말부터 전국에 패치 광풍이 불었습니다. ‘○○패치’라는 이름이 달린 인스타그램 계정들을 통해 프라이버시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된 것이죠. 성생활과 성병 치료 내역, 성형 수술 내역까지 무차별적으로 폭로됐습니다. 얼굴이 나온 사진과 함께요. ○○패치는 연예인들의 열애설을 보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연예매체 <디스패치>를 모방해서 지은 이름으로 보입니다.

○○패치로 명예를 훼손당한 피해자들은 불안감과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지켜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고, 나보다 잘난 줄 알았던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마음의 위안도 얻었을 겁니다. 경찰조사결과, 대부분 허위사실이거나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었습니다만.

경찰이 대대적으로 패치 수사에 나서면서 각종 패치들 활동은 잠잠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저에 깔려있던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제2의 ‘패치’가 등장할지 알 수 없습니다. ‘○○패치’, 그들의 진화과정을 짚어봤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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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에도 원조가 있다

패치 시리즈의 원조는 강남패치입니다. 경찰 설명을 들어보면, 강남패치의 운영자 정아무개(24)씨는 한 대기업 오너 외손녀에게 질투심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지난 5월초 인스타그램에서 ‘강남패치’라는 계정을 개설했습니다. 올린 내용들은 ‘○○는 △△업소 출신 아가씨다’, ‘□□ 허벅지 지흡(지방흡입)함’ 등 특정인의 유흥업소 근무 내역이나 남자관계(혹은 여자관계), 성형수술 여부 등이었습니다.

강남패치는 개설되고 바로 이슈가 되진 않았습니다. 2달여가 지난 6월 하순께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통해 강남패치에 대한 소문이 확산됐죠. 인스타그램쪽에서는 강남패치가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되자 관련 계정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운영자 정씨는 “훼손될 명예가 있으면 날 고소하라”는 글을 쓰는 등 피해자들을 조롱하며 새계정을 만들어 범죄를 이어갔습니다. 이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좌표’(새로바뀐 강남패치 계정 주소)가 공유되며 강남패치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죠. 경찰은 “정씨가 서울 강남 일대 유흥업소를 다니면서 연예계와 유흥업계에 관한 풍문을 들은 것과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들어오는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게시물을 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괴물은 또 다른 괴물을 낳는다고 하죠. 강남패치는 한남패치, 성병패치, 재기패치 등 수많은 아류작들을 만들어냅니다. 강남패치 운영자 정씨는 다른 패치가 탄생하는 데 ‘영감’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한남패치 운영자 양아무개(28)씨에게 일부 제보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패치의 양상은 조금 변합니다. 강남패치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프라이버시를 폭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아류작인 한남패치(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표현인 한남충의 사생활 공개), 성병패치(남성들의 성병 내역 공개), 재기패치(고 남성연대 대표인 성재기씨로부터 따온 이름으로 남성들의 성매매 내역 등을 공개), 오메가패치(오메가는 임신가능한 남자를 뜻하는 은어로 대중교통 임산부 좌석에 앉은 남성들을 공개) 등은 작명에서부터 남성 혐오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이들 패치들은 일제히 강남패치가 인터넷과 언론 등에 회자된 6월말께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합니다. 물론 여성을 겨냥한 워마드패치, 메갈패치(남성을 비하하는 글이 올라오는 커뮤니티 워마드, 메갈리아 사용자를 공개) 역시 대응적 성격으로 이즈음 생겨나죠.

패치는 경찰이 지난 8월말에서 9월초에 걸쳐 강남패치, 한남패치, 성병패치, 재기패치의 운영자들을 잇따라 검거하면서 다시 회자됩니다.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패치운영자의 범행동기는 하나같이 남성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한남패치 운영자 양아무개씨는 2013년 성형수술을 받고 부작용이 생겨 병원과 법적 다툼을 이어오다가, 강남패치를 보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고 문득 자신을 수술한 의사가 떠올라 겉과 속이 다른 남자들을 공개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남패치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성병패치 운영자 김아무개(20)씨도 경찰조사에서 “여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남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고, 재기패치 운영자 이아무개(31)씨도 “조건만남이나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의 혐오했기 때문이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이들 모두 워마드 등 남성혐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왜 여자만 신속수사하냐는, 편파수사 의혹

잇따른 패치 운영자들 검거 이후, 남녀간 폭로로 맞선 혐오 전쟁은 예상치 못한 부분으로 번졌습니다. 경찰의 ‘편파수사 의혹’으로 말이죠. 그러니까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에 대한 수사 속도는 더디고, 남성을 비하하는 여성에 대한 수사는 상대적으로 너무 빠르다는 주장입니다. 지난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여성 50여명은 “수사 착수의 기준은 성별?”, “안 잡은 건가 못 잡은 건가” 등의 현수막을 들고 서울 인사동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모임을 주도했던 한 여성은 <한겨레>와 만나 “보복성으로 인터넷에 성관계 동영상들이 유출된 여성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미적대다가 17년만에 범인을 찾아냈다. 그런데 패치를 운영했던 여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빨리 대응할 수 있나. 여성들의 명예를 훼손한 남성에 대해서는 경찰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편파수사 의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패치 관련 수사가 신속히 처리됐던 이유에 대해 경찰은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국제협력팀에서 외국계 아이티(IT)업체들과 오랜 시간동안 수사협조를 논의했던 부분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온라인상에서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의 아이피(IP)주소 등 접속기록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에서 발부하는 영장은 외국기업에 구속력이 없어 수사기관이 외국계 에스엔에스에 가입한 이들의 접속기록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경찰청 국제협력팀은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구글과 페이스북 등 외국계 아이티기업을 만날 때 마다 수사를 협조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들을 쭉 진행해왔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번에 패치들이 개설됐던 인스타그램 고위관계자와도 지난 8월 국내에서 직접 만나 자료제출이 가능한 항목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이번 패치의 경우, 애초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정이 생성됐고, 범위가 많게는 수십명에 이르러 기존에 합의됐던 협조 항목에 포함돼 신속한 협조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경찰이 패치 수사에 나선다고 발표했을 때, 일각에서는 외국계 계정이라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영장집행에 협조하지 않았더라면 패치수사가 미궁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울의 한 일선서 사이버팀장은 “서버운영업체가 외국에 있는 경우 기본적으로 수사가 매우 어렵다. 우리가 범죄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 나라에서는 범죄가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인터넷 도박업체를 운영하는 자들을 수사할 때는 온라인쪽 수사보다 오히려 인터넷 도박에 사용된 계좌를 추적해 범인을 잡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미적대다가 17년만에 범인을 찾아낸’ 소라넷에 대한 수사는 어땠을까요. 경찰청 국제협력팀 관계자는 “소라넷은 서버가 해외에 있고, 운영자 역시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피의자 특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우리는 음란물을 처벌하지만 외국은 아동 음란물에 대해서만 처벌할 뿐 성인음란물에 대해서 범죄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글로 서비스되고 있어 자국에는 크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아 협조를 잘 안해줬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그나마 서버압수에 협조를 해준 국가 덕분에 소라넷 운영자를 특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외에 체류중인 그를 못잡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성별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를 하기 때문에, 편파수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치 수사도 잡고 나니 여성이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베와 메갈리아가 패치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각종 남혐·여혐 패치들은 여성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일간베스트(일베)와 같은 방식으로 남성을 공격하는 메갈리아·워마드의 축소판이었습니다. ‘혐오의 분출’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영역으로 들어와 양상을 달리하며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패치사건은 성별을 떠나 우리 사회에 이미 구조화 되버린 혐오의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패치관련 수사는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수사하고 있는 오메가패치, 서울 은평경찰서에서 수사하고 있는 워마드 패치가 있습니다. 경찰은 “프라이버시 폭로용 에스엔에스 계정은 현재 잠잠해 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이 대대적으로 패치 수사에 나섰고, 또 패치 운영자를 검거하는 등 수사성과를 내고 있어서 위축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입니다. 그렇다고 혐오에 기반을 둔 무차별 폭로라는 범죄행위 자체를 근절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패치가 그랬듯, 언제든지 다른 형태의 프라이버시 폭로전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준행 전 일간워스트 개발자는 “원래 개인의 프라이버시 정보는 은밀한 비디오나 지라시 형태로 주고받았는데 이번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패치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기회가 생기면 또 다른 양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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