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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최신혜의 色다른 성] 도 넘은 여혐·남혐…엉뚱한 사람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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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최신혜기자] 지난해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이하 메겔)를 중심으로 확대된 소위 ‘이성혐오’ 현상이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메르스 확진자와 접촉한 여성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에 남성들이 메갤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를 쏟아냈고, 오보임이 밝혀지자 분노한 여성들이 같은 방식으로 반격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여혐’은 여성혐오의 준말로,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반여성적인 편견을 뜻한다. 이는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상,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러가지 방식을 뜻한다. ‘개똥녀’, ‘루저녀’, ‘된장녀’, ‘김치녀’ ‘보슬아치’, ‘씹치녀’ ‘맘충’ 등의 단어들이 여혐에 사용되는 주요 용어다. ‘남혐’은 여혐의 대칭존재로 등장한 용어다. 멸시·편견의 대상이 돼온 여성들이 반격의 의미로 ‘씹치남’, ‘자슬아치’ 등 조어를 통해 남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시작한 것이다.

여혐·남혐 갈등구조는 일베저장소, 메갈리아 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대돼 점점 더 극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는 일상 전반의 화젯거리를 이성혐오로 치부해 갈등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위독한 할머니를 뵙기 위해 급하게 휴가를 얻은 군인이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을 때 자신이 모는 버스의 자리를 내준 버스기사가 여혐 논란에 휩싸여 화제가 됐다. 일부 네티즌들이 “여성이라면 안 태워줬다”는 식의 비난을 쏟아내자 버스기사는 사과와 함께 게시글을 삭제했다.

지난 8월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출간한 류근 시인도 여혐 논란에 휩싸인 대상이다. 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중 “아내 몰래 7년을 끌어온 연애가 끝이 났을 때”(‘아슬아슬한 내부’ 중), “마누라가 준 용돈으로 용돈 준 여자가/ 다른 남자랑 공항버스 타고 사라지는 뒷모습 보고 와서”(‘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중) 등의 내용이 여혐으로 지적된 것. 지난 5월 17일 새벽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화장실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사건의 이유로도 여혐이 지목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성혐오 논쟁은 너무 과하다. 마치 ‘싸우기 위한 싸움’을 거는 식이다. 사건의 본질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 여혐·남혐 논란이 불거져 당사자들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는 일도 빈번해졌다. 군인을 무료로 태워준 버스기사는 계속되는 여혐 공격에 “죄송하다, 다시 이런 일이 생겨도 또 (누군가를) 태우겠지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태우겠다”는 게시글을 올렸고 류근 시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구체적 근거(작품 인용 등)도 없이 개인적 지레짐작만으로 여혐에 대한 총알받이로 자신의 시집을 이용했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묻지마 살인사건의 정확한 이유로 가해자의 조현병을 지목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도,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경의 범죄’도 모두 문학으로서의 가치보다 여혐을 담은 한낱 소설로 전락했다. 대학가 커뮤니티는 지나친 논쟁에 하나 둘씩 폐쇄돼간다. 우리 모두는 누구를 위한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일까. 고민해봐야 할 때다.
ss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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