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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앵커브리핑] 의원실 씨족모임…'낙타의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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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막의 밤은 추위로 가득합니다. 작렬하던 태양이 어디론가 사라진 깊은 밤의 한 가운데 낙타는 추위를 피할 방법을 찾습니다.

낙타는 먼저 작은 코를 주인의 천막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작은 코 하나 쯤이야" 주인은 무심하게 잠이 들지만 낙타는 코에 이어서 얼굴을, 앞다리를, 기어이 몸 전체를 조금씩 조금씩 천막 안으로 들이밉니다.

결국 주인은 낙타에 밀려서 천막 바깥으로 쫓겨나고 만다는 중동지역에서 전해지는 우화입니다.

10년쯤 전에 '낙바생' 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취업문을 통과한 대학 예비졸업생. 그 바늘귀는 점점 더 좁아져서 이제는 거길 통과한 낙타를 찾기도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낙타는 뭐 그리 좋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게 됐습니다.

아무튼 추운 사막에서 주인의 천막 안으로 코를 들이밀던 그 낙타들이 국회로 들어갔습니다.

국회의원의 가족이 인척이… 심지어 상대를 비판하던 당들까지도. 여야 구분 없이 의원실을 차지하고 씨족모임이 되었다는 얘기…

더구나 지금은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취업이 어려운 무직의 시대가 아니던가…

친인척이 국회의원이면 아무래도 바늘귀보다는 국회라는 천막이 더 들어가기는 쉬웠을 테니까요.

이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자는 법안은 이미 12년 전부터 발의됐지만 말 그대로 낙타의 코 정도로만 여겼는지 덮고 가리고 지내오다가 이제는 최소한 머리와 앞다리 정도는 들여놓은 모양이 됐습니다.

12년 전… 코만 한 대 세게 쥐어박았어도 금세 해결할 수 있었던 이 문제는 어느새 주인이 낑낑대면서 몰아내기에도 힘들 정도로 불어버린 셈이지요.

하긴 이 경우는 몰아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끌어들인 것이니까 비유가 딱 맞지는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메르스로 홍역을 치른 그 낙타는 오늘(30일)은 또 국회얘기로 끌려 들어와서 곤욕을 치르게 되었군요.

낙타가 객지에서 고생이 참 많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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