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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금융사들 런던 엑소더스? 떨고 있는 ‘더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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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탈퇴, 세금 등 매력 잃어

“은행들 본사 이전 움직임”

“일자리 10만개 감소” 분석도

영국, 금융업 강화 대책 부심

중앙일보

[사진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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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금융 여권(Passport)’이 무효가 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낳을 또 하나의 후폭풍이다.

금융 여권은 유럽 단일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가상의 인증이다. EU 28개 회원국 금융회사들에 모두 부여됐다. 하지만 런던의 금융 위상이 상대적으로 커 금융 여권은 ‘런던 금융 여권’으로 불리곤 한다. 이런 런던의 금융 여권이 얼마 뒤면 쓸모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EU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지난주 말 “런던 금융회사의 단일 시장 접근 제한은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인이 치러야 할 비용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금융 여권 무효화는 즉각적인 반응을 낳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은행들이 회사를 영국 밖으로 옮기기 위해 이미 행동에 나섰다”고 25일(현지시간) 전했다. 런던 금융회사 인사들이 유럽 각국 금융감독 당국자를 만나 면허 연장이나 회사 이전 등을 놓고 의논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물론 FT가 런던 금융계를 대변하고 브렉시트를 반대해온 매체여서 일부 금융계 인사들의 움직임을 부풀려 보도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금융은 민감하다. 법규, 세금, 기대수익 등에 따라 본사나 현지 법인을 신속하게 재배치한다. 1960년대 유로머니(유럽 달러자금 시장) 본격화와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자본 규제를 피해 많은 금융회사가 런던으로 주요 사무실을 이전한 게 대표적인 예다. 덕분에 런던엔 미국계인 JP모건, 골드먼삭스, BOA메릴린치와 독일계인 도이체방크, 스페인계인 산탄데르 등 거대 금융그룹의 국제본부가 모여 있다.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국제본부도 런던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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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여러 가지 매력이 작용했다. 런던은 20세기 초까지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다양한 금융 인프라와 문화가 잘 갖춰져 있다. 여기에다 영국이 80년대 금융규제를 선도적으로 완화했다. 자국 금융회사를 보호해온 장벽을 제거했다. 그 바람에 많은 군소 증권사 등이 망했다. 바로 런던 금융시장의 빅뱅(Big Bang)이다. 이런 요인들은 유럽 단일시장 구축과 맞물려 런던을 미국 뉴욕과 맞먹는 ‘금융 발전소’로 부활시켰다.

브렉시트는 런던 더 시티(금융지구)엔 충격이다. 이미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분석은 돼 있다. 회계·컨설팅 회사인 PwC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더 시티 일자리가 앞으로 4년 안에 7만~10만 개 정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금융회사가 런던을 탈출해서다.

금융회사들은 어디로 갈까. FT 등은 “JP모건 등이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일랜드 더블린 등으로 옮겨가는 걸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블린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역사적으로 런던보다 오랜 금융 전통이 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 때문에 금융 파워가 커진 런던의 그늘에 가렸다. 이제 브렉시트를 계기로 세 곳은 런던의 그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엿보인다. 여차하면 런던에 집중된 금융 파워가 여러 나라로 분산될 수도 있다.

단일 시장 접근 제한이 금융 중심지 이전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다. 17세기 금융 중심지였던 암스테르담이 프랑스와 전쟁 등으로 다른 나라와 거래가 끊기자 많은 금융인이 런던 등으로 근거지를 이동했다. 암스테르담의 금융패권 상실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잘 알고 있는 영국이 두 손 놓고 바라만 보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산업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안팎이다. 금융계 일자리 10만 개 감소는 영국 전체적으론 일자리 95만 개가 줄어드는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PwC의 분석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영국은 서둘러 다른 EU 회원국뿐 아니라 한국·일본·중국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려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독일과 프랑스 등의 반감이다.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는 24일 “영국이 EU 금융 법규를 모두 받아들여야 단일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분적 주권 포기다. 단일 시장 접근 협상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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