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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만물상] 독거 노인 살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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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이 잦은 노인 집에서 기침 소리가 끊긴다. 아침이 돼도 인기척이 없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다. 지난해 일본 IT 기업 후지쓰제작소가 집에서 나는 소음을 분석해 독거 노인의 안부를 알려주는 서비스 상품을 내놓았다. 마이크 달린 단말기를 집에 설치해두고 낌새를 채면 가족과 병원에 알려준다. 사생활을 건드릴까 봐 말소리는 듣지 않고 소리 패턴만 본다고 한다.

▶일본은 요양보험 비롯해 노인 복지 제도를 잘 갖춘 모범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5년 전 NHK가 독거 노인 '고독사(孤獨死)'와 행방불명 실태를 집중 보도하자 일본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한 해 고독사가 3만2000건, 일흔 살 이상 노인 가출 신고가 1만건에 이른다. 생활 소음에 귀 기울여 노인을 보호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할 만하다. 치매 노인에게 "약 드실 시간"이라 말해주는 로봇도 나와 있다. 날마다 차를 끓여 마시는 노인의 주전자에 센서를 달아 어느 날 주전자에 물이 끓지 않으면 자식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노인이 인구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의 그늘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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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독거 노인이 10년 전 77만명에서 작년 137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야쿠르트 아줌마' 1만3000명이 매일 독거 노인 집을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기업이 공짜 우유를 배달하며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래도 민간 봉사와 행정력으로는 갈수록 대처하기가 버겁다. 얼마 안 가 일본처럼 '독거 노인 살피기'가 국가적 고민이 될 것이다.

▶한국전력이 광주광역시에서 노인의 신변 이상을 알려주는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노인은 팔찌 모양 기기를 차고 집 부근 전봇대엔 센서를 달아둔다. 노인이 집에서 100~150m만 벗어나도 보호자에게 연락이 가는 시스템이다. 전기 사용량을 분석해 늦은 밤 불이 켜 있거나 아침에 전기를 쓰지 않아도 알려준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집이 드물고 기존 한전 시설을 쓰니 돈도 적게 든다.

▶수도·가스도 비슷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초수급자가 돈을 안 받거나 은행 거래가 없거나 과태료·세금이 밀린 기록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감시만 잘한다고 독거 노인 문제가 풀릴까. 어르신들은 남모르는 죽음보다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이웃끼리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아쉬운 일은 서로 돕는 미덕만 되살아나도 걱정이 확 줄 것이다. 혼자 사는 노인 문제를 푸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차갑게 식어버린 인정(人情)이다.

[김태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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