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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국문학은 이제 시작…저는 제 방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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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 한강 작가 귀국 간담회

한국일보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카페 꼼마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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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길 바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자리가 끝나면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책으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국내 언론 앞에 섰다. 24일 서울 서교동 카페 꼼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50여 개 언론사가 몰려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애초에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에서 나온 신작 ‘흰’의 출간기념간담회로 예정됐던 이날 행사는 작가의 수상으로 급하게 맨부커 간담회로 변경됐다.

예정된 시간보다 5분 늦게 서둘러 들어온 작가는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앞에서 쑥스러운 듯 간혹 웃기도 했지만 예의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간담회에 임했다. 작가는 “소박하고 조용한 자리를 계획했었는데 생각과 달리 굉장히 압도적인 자리가 되었다”며 웃은 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난달 영국으로 출국하며 “수상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며 “예기치 않게 상을 받게 됐고 축하의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까지 들어 지난 일주일간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수상작 ‘채식주의자’에 대해 작가는 이 소설이 11년 전에 완성한 것임을 상기시키며 “수상 자리에서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을 쓴 게 오래 전이었기 때문”이라며 “나는 이미 그 작품에서 걸어 나왔고 이후의 소설들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를 통해 그때의 질문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작가와의 일문일답.

-수상자리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사실 시차 때문에 거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다. 다행히 발표 나기 직전에 커피를 한 잔 마셔서 무사히 그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엔 기쁘다기 보다는, 좋은 의미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컸다. 11년 전에 쓴 소설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아,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공동수상한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이 화제가 됐다. 처음 번역본을 봤을 때의 느낌은.

“지금까지 ‘채식주의자’가 여러 언어로 번역됐지만 영어로 번역되기 전까지는 읽어본 적이 없다. 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뿐이라 번역자와 편집자를 무작정 신뢰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데버러씨가 처음 번역본을 보내줬을 때 그래서 굉장히 반가웠다. 그때 마침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있던 때라 문장을 일 대 일로 대조해 보지는 못하고 톤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나는 소설에서 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데버러씨의 번역도 톤을 중시하는 번역이었다. 1장에서 영혜가 독백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의 느낌을 원래의 감정과 톤 그대로 번역해냈고 마음이 통했단 느낌과 함께 신뢰를 갖게 됐다.

-번역자들이 작품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원작에 충실하다는 기준은 감정과 톤의 전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의 경우 그대로 옮겨 버리면 외국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편집자와 상의 후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번역을 한 스미스와도 많은 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때론 한 줄을 설명하기 위해 한 페이지 분량으로 역사적 맥락과 한국의 특수한 정서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됐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가 많이 팔리고 있는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나의 질문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나는 어려운 소설, 어려운 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을 대답이나 제안으로 받아 들이면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는 반응이 나오지만, 질문으로 받아들이면 이 세상에 어렵거나 지루한 문학은 없다. 그렇게 조금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좋겠다.”

-맨부커상 수상과 맞물려 최영미 시인의 생활고 이야기가 나왔다. 집필 활동 중 힘들었던 적은 없나.

“나는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던 사람이 아니라 이 상황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수상 전 ‘채식주의자’가 2만부 정도 팔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많이 팔렸다고 생각한다. 1년에 2,000명 정도 읽었다는 건데 그 독자들을 귀중하게 여겨왔다.”

-한국에 훌륭한 작가가 많다. 한국 문학의 발전 가능성이나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나는 한국문학 속에서 글자 그대로 자라난 사람이다. 한국 작가들이 쓴 작품을 읽으며 자랐기 때문에 한국문학에 큰 애정과 빚이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많이 읽혀지길 바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론 이런 일이 화제가 되지도 않을 만큼 자주 일어날 거라고 본다. 좋은 번역자들이 많아졌고 외국 편집자들도 한국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다. (한국문학은)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신작 ‘흰’과 다음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흰’은 ‘소년이 온다’에 이어지는 소설이다. 201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면서 폭격으로 파괴되고 재건된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상상했고, 그에게 삶의 어떤 부분을 준다면 그건 아마 흰 것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명, 빛, 밝음, 눈부신 것들,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이 온다’에 이어지는 소설이 하나 더 있는데 작년에 쓴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혼 3부작’의 첫 번째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윤리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은 한국 최초다. 이 일을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

“개인적으로 일상에 큰 변화는 없다. 여기 오기 전에 출판사에서 택시 타고 오라고 택시비도 주셨는데 지하철 탔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웃음). 나는 이 자리가 끝나면 다시 하던 작업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책을 통해서 할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맨부커상 이후 노벨문학상 얘기도 나오고 있다. 작가로서 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글 쓰는 사람한테는 그냥 글 쓰라고 하면 좋겠다. 노벨문학상은 책이 나오고 아주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에 따르면 수상 직후 영국에서 ‘채식주의자’ 2만부가 증쇄됐고 간담회 당일 2만부가 추가로 증쇄됐다. 이 대표는 “라트비아, 인도남부 소수언어권에서도 관심을 보여왔다고 중국에서는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장편소설을 출간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작가는 신작 ‘흰’과 관련해 6월 3~26일 서울 성북동 스페이스오뉴월에서 사진작가 차미혜씨와 함께 2인 전시회 ‘소실점’을 연다. 차 작가의 사진과 함께 한강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을 볼 수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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