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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바람난과학] “인공위성이 더 큰 전쟁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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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C=이정아 기자] 인공 장기를 만드는 나노 3D 프린터의 등장, 그리고 인간-사이보그 결합 가능성 때문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앞으로 더 꼬이게 생겼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지식 나무’ 열매를 먹고 동물과 달리 지적인 존재가 됐습니다. 인간은 이제 과학으로 영생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 나무’ 를 인간의 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죠. 인간이 사이보그 인간과 인공지능(AI)에 밀리는 건 어쩌면 시간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군중의 지혜’를 강조한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70)을 만났습니다.『유엔미래보고서』의 저자인 그는 지난달 2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학술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그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집단지성이 국경과 무역, 인류의 삶 전반을 모두 바꿔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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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에서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가까운 미래, 제조업 유통산업이 추락한다

글렌 회장은 향후 5년 내 주목할 만한 변화로 ‘나노 3D 프린팅’ 기술을 꼽았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철·플래티넘 등 다양한 물질을 분자 단위로 프린팅하는 3D 프린터가 1만 대 이상 팔리게 되면 프린터가 만든 제품의 생산량이 한 국가 생산량에 맞먹게 됩니다. 개인이 집에서 제품을 찍어낼 수 있게 되니까 국가 간 거래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는 건데요. 이로 인해 노동에 대한 개념도 달라지게 됩니다. 글렌 회장은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로봇이 극한 상황에서도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인간을 통한 생산은 점차 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국가와 기업이 집단지성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이상 혼자 힘으로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글렌 회장은 “집단지성으로 1~2년 뒤를 예측하게 되면 당장 미래 시점에서 최고로 인정받을 만한 기술을 선점하려는 국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뇌처럼 기억, 사고, 검색이 되고 국가 간 경계를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집단지성 시스템이 등장하면 국가가 의사결정을 할 때도 의회나 간접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신직접민주주의 또는 전자민주주의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죠.

더 빠르게 가속되는 과학적 지식의 속도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기업·국가가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 만든 기술인데, 기술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그 이득이 제 3자에게 제공되는 게 아니냐…하는 겁니다. 집단지성 시스템에 무임으로 승차하는 ‘프리라이더’가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지요.

하지만 글렌 회장은 기술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2년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론은 깨졌지만, 과학적 지식의 속도는 더 빠르게 가속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입니다.

“과거에는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테스트하고 평가해 그 결과를 출판해 알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연구를 위해 컴퓨터 매칭 작업이 필요해 ‘이걸 할 사람 없습니까’라고 인터넷에 외치기만 하면 다음 날 많은 사람이 나설 겁니다. 전 세계에 걸친 슈퍼컴퓨터를 빠른 시간 내에 가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최근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런 머스크가 자사가 만든 전기 배터리 디자인 정보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머스크 CEO도 변화의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독식하기 보다 공유하는 게 시장을 선점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었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재산권이 개선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 본인의 성과를 공개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빠른 속도로 기술이 개선되고, 또 개선되고 있습니다. 지식재산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쓰는 시간 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시간을 쓰는 게 부가가치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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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인간보다 똑똑해진다



조금 더 먼 미래를 상상해봤습니다. 집단지성 시스템이 발달되면 이 시스템을 탑재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텐데 이때가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능가하진 않을까요? 이에 대해 글렌 회장은 세 단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설명합니다.

“지금은 첫 단계입니다. 협의의 인공지능 (ANI·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 애플의 시리나 구글의 알파고는 ‘만약~ 이라면’이라는 정해진 추론에 근거해 매우 좁은 영역의 과정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2030~2035년이 되면 범용 인공지능 (AGI, General)이 등장할 겁니다. 인간처럼 배우고 사고해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 그 정점에서 초인공지능 (ASI, Supernatural)이 나타납니다. 초인공지능은 합성 생물학과 결합해 생물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스타워즈 속 ‘더 포스’ 처럼 사물인터넷을 통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우리 자신보다 더 영리한 존재와 마주치게 될 겁니다.”

글렌 회장이 인공지능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을 회피하는 건 근본적으로 미래를 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정립되고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독재정권의 위력이 줄어든 게 대표적 사례죠. 의식과 기술은 같이 갈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협력을 방해하는 집단도 기술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냉전 당시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인공위성 덕분에 더 큰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며 “기술과 의식이 상호작용을 거듭하면 평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고 예측했는데요. 미래는 과연 더 나아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세계 전망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분야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고 정책 입안이 돼야 할까요? “미래를 짊어진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글렌 회장의 말처럼, 미래는 예산과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것’ 임에는 분명합니다.

제롬 글렌 =미래학자. 세계미래연구기구협의회 회장. 세계 NGO가 주축이 된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 산하 유엔미래포럼은 매년 미래 전망 분석보고서인 『유엔미래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는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불리는데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의 전문가와 학자, 기업인들이 참가해서 작업하고 있다. 제롬 글렌은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수장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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