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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피눈물' 가습기 피해자 엄마의 외로운 '5년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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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호소·성토·소송…권미애씨 제조사와 힘겨운 다툼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어…아들 삶 부순 회사와 계속 싸울 것"

연합뉴스

산소발생기와 임성준군
(용인=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만성폐질환을 앓는 임성준(13)군이 학교에 다녀와 산소발생기 앞에 앉아 있다. [권미애씨 제공]


(용인=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내가 내자식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만성폐질환 환자 임성준(13)군의 어머니 권미애(40)씨는 벌써 5년째 제조사와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권씨는 2003년 초 첫 아이인 임군을 얻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다.

그 선택을, 권씨는 1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1년 만에 임군은 호흡곤란 등 이상증세를 보였다.

당시 단순 감기로 알고 동네병원을 갔던 임군은 종합병원 중환자실으로 옮겨졌지만, 정확한 원인과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갓 돌이 지난 임군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됐다.

숨쉴 수 없어 목에 구멍을 내고 산소튜브로 호흡했고, 밥을 먹을 수 없어 배에도 구멍을 내고 위로관을 연결했다. 엄마품 대신 병상에서 임군은 1년 가량 병마와 사투를 벌였다.

2005년, 임군은 키 만큼 큰 산소통을 끌고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다만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다.

임군은 유치원이나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10년여 동안 권씨와 주로 집 안에서 생활했다.

권씨는 "성준이가 그린 그림에는 목이 없다. 자신이 목을 가리고 다녀서인지, 상처를 숨기고 싶은 것인지…"라며 "퇴원 후에는 맛있는 음식을 해줘도 냄새를 맡지 못하는 데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좋아한 적이 없다"고 눈물을 쏟았다.

이어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계속 음식물을 씹도록 했다. 혼도 냈다"며 "아이가 울어도 아무 소리 나지 않을 때, 혹은 나를 보며 '엄마 난 왜 배꼽이 두개야?'라고 물을 때면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던 중 권씨는 뉴스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를 접하게 됐다. 통원치료를 받던 종합병원 한 의사로부터 임군의 증세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같다는 소견도 받았다.

문제는 증거찾기였다.

10년 전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영수증은 모두 사라진 뒤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권씨는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임군을 안고 찍은 가족사진 속 창틀 위에 올려진 가습기 살균제를 찾았다.

진료기록과 구매증거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권씨는 고민을 거듭했다.

권씨는 "내가 내자식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누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느냐"며 "망설임 끝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소송에 참여키로 용기를 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2년 권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함께 제조사 및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기업을 상대로 한 지난 5년간의 싸움은 평범한 주부였던 권씨에게는 극도로 외롭고 힘든 것이었다.

피해자가 워낙 많았던 탓에 소송과정에서 변호사나 피해자 대표와 매번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

권씨는 "솔직히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며 "더욱이 각 피해자마다 가습기 살균제 구매시점부터 피해사례가 달랐기 때문에 우리 아이만의 피해사례를 강조할 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권씨는 일부 피해자들과 떨어져 나와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소송에만 매달린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딪히기도 했다.

권씨는 2년 전까지 다른 피해자들과 돌아가며 국회 앞 1인 시위를 했다. 여기에는 산소통을 손수레에 실은 임군도 동행했다.

권씨는 또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호소하기도 했고, 국정감사에서 나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성토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본사를 직접 찾아간 적도 두 차례나 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첫 방문에는 그 누구도 권씨를 만나려 하지 않았고, 1층에서 2시간을 마냥 기다리다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두 번째 방문에는 한 임원이 나왔지만, 아무런 사과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조사는 최근 들어서야 억대의 합의금을 제시하며 조정을 요구해왔다.

권씨는 피해자들을 거들떠보지 않던 제조사가 검찰 수사 및 언론 보도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사과의 제스처를 보내왔다고 주장한다.

권씨는 "소송을 제기한 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를 방문했지만 '법원에서 판사가 하라는대로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기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지친 일부 피해자들은 제조사와 조정을 성립하기도 한다"며 "함께 소송을 낸 피해자와 '이러다 우리만 남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도 마음을 굳게 먹고 있다. 아들의 인생을 산산조각 낸 제조사와의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초 권씨처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피해자 유족들이 패소했다. 이들은 제조사에도 같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앞서 조정이 성립해 제조사는 소송에서 빠졌다.

kyh@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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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관 연결한 임성준군
(용인=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13)군은 병원에서 퇴원하던 2005년 식사를 할 수 없어 위로관을 연결해 생활했다.[권미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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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통 끌고 다니는 임성준군
(용인=연합뉴스) 임성준(13)군이 지난 2005년 병원에서 퇴원한 뒤 키만큼 큰 산소통을 끌고 다니는 모습.[권미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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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구매증거
(용인=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13)군 가족들이 2003년 크리스마스 찍은 가족사진. 창틀 위로 가습기 살균제가 보인다.[권미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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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는 임성준군
(용인=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13)군은 손수레에 실린 산소통을 끌고 학교를 오간다. 임군의 몸무게는 30kg에 불과하다. [권미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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