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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국회가 잘못꿴 첫단추, 정부는 우왕좌왕… 中·日면세점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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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면세점 '잃어버린 3년']

- '5년 한시法'으로 허송세월

"5년마다 심사… 아차, 다시 10년" "기존 2곳 폐점… 아차, 4곳 추가"

- 中·日은 면세사업 강화

中, 내국인 면세점 19곳 추가… 日은 사후 면세점 1만개 늘려

- "규제 철폐하고 자유화해야"

작년에 사업권 딴 면세점들 "뿌리내리기도 전에 또 뽑나"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치열한 면세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2014년 하이난섬에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을 개장했고, 일본은 한국 시내 면세점을 벤치마킹해 최근 도쿄 긴자에 대형 면세점 2곳을 열었다.

반면 한국은 모든 면세점 사업권을 5년마다 원점에서 재심사하는 '5년 한시법'이 2013년 국회를 통과한 이후 금쪽같은 시간을 날렸다. 면세점을 6개 추가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29일 면세점 업계 관계자들은 "정치권과 정부의 뒷다리 잡기식 법안과 정책으로 날린 3년을 생각하면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5년 한시법'으로 잃어버린 3년

중국은 지난 2월 주요 도시에 입국장 면세점 19곳을 추가로 선정했다. 지금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국제공항에서만 운영하던 입국장 면세점을 대도시 국제공항까지 넓혀 해외로 빠져나갈 면세품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추격은 더욱 거세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가가치세를 즉시 환급해주는 사후(事後) 면세점을 2만개에서 3만개로 늘리고, 도쿄 오다이바에는 대형 면세점을 포함한 복합 리조트를 건설한다.

조선일보

관광객은 몰려오는데… 폐점 앞둔 곳도, 새로 개장한 곳도 ‘조용’ - 정부가 4곳의 시내 면세점 사업자를 추가 선정하겠다고 발표한 29일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고객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직원들만 눈에 띄었다(왼쪽 사진). 서울 인사동 SM면세점은 이날 그랜드 오픈 행사를 열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지만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이태경 기자·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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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국들이 면세점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는 사이 한국은 '5년 한시법'으로 허송세월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이 면세점 신규 투자 경쟁을 벌이는 사이에 우리는 재허가를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에 매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면세점 사업권 상실 판정을 받은 롯데 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 면세점은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롯데면세점은 올 연말까지 완공되는 지상 123층 월드타워에 5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초대형 관광쇼핑 복합단지 면세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가 1000억원을 투자한 워커힐 면세점 리노베이션 계획도 마무리 단계에서 중단됐다.

"5년 한시법 통과에 정부·여당도 책임"

조선일보

면세점 사업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국회 책임이 가장 크다. 2012년 더불어민주당 홍종학 의원은 "면세점을 독점하는 재벌 기업 특혜를 막아야 한다"며 당초 10년이던 사업권 기간을 5년으로 줄이는 내용의 이른바 '5년 한시법'을 발의했다. 문제는 이 법안을 여당과 정부가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이 법안의 국회 심의에 걸린 시간이 1분여에 불과했다.

정부는 뒤늦게 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지난달 재개정 방침을 밝혔지만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실제 홍종학 의원은 이날 정부·여당이 5년 한시법 재개정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 "20대 국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된 만큼 법안 통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면세점 전문가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정부도 공동 책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새로 사업권을 받은 한화갤러리아·두산 등은 면세점 추가 허용에 대해 "사업이 뿌리내리기도 전에 또 다른 사업자가 추가돼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졌다"고 하소연했다.

"규제 철폐하고 완전 자유화로 가야"

정부는 이날 "서울 4곳과 부산·강원을 합쳐 6곳의 신규 면세점 사업자들이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총 1조원을 투자하고, 5000명 이상을 신규 고용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속화되는 글로벌 면세점 경쟁에서 정부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면세점 관련 규제를 철폐하고 전면 자유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형화하는 글로벌 면세점 사업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자율 경쟁을 통해 생존력을 갖춘 '선수'들이 나오도록 진입장벽을 확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면세점을 열 수 있도록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설립 요건을 완화해 아예 특혜 시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5년 한시법

면세점 사업권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인 개정 관세법. 과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사업권을 자동 갱신했지만 이 법에 따라 5년마다 원점에서 사업권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장기 투자가 어렵고,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채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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