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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IF] 말라리아, 씨 말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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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0만명 희생되자… 유전자 조작으로 말라리아 모기 '인도적 멸종' 추진 논란

지카 비상 브라실선 ‘자살 모기’ 실험… 美, 인도적 멸종 가이드라인 추진

얼룩날개모기(Anopheles gambiae)가 옮기는 말라리아는 한 해 60여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지난 15년간 전 세계가 말라리아 퇴치에 쏟아부은 돈만 1000억달러(약 114조원)가 넘는다. 살충제와 항말라리아제를 융단 폭격하듯 썼지만 말라리아는 요지부동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세계 최대의 민간 구호단체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도 두 손을 들었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이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내전에 시달리는 국가에서 외국 의료진도 손을 쓸 수 없었다.

게이츠재단은 특단의 조치를 선언했다. 말라리아 모기에 대한 '인도적 멸종(humanitarian extinction)'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단시간에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없다면 말라리아 매개체인 얼룩날개모기를 없애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이집트 숲모기(Aedes aegypti)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추진되고 있다. 과연 인도주의를 내건 멸종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2년 안에 모기수 1%로 급감 목표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의 오스틴 버트 교수는 게이츠재단의 지원을 받아 '타깃 말라리아(Target malaria)'라는 모기 박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현재 영국,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3개국의 16개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목표는 유전자변형 얼룩날개모기를 아프리카에 풀어 11세대 만에 모두 후손을 낳지 못하는 모기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불임(不妊) 모기만 남으면 얼룩날개모기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 모기가 태어나서 자손을 낳을 수 있을 때까지 26일이 걸리니 산술적으로 300일이 안 돼서 멸종이 가능한 셈이다.

버트 교수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2003년 처음 제안했다. 하지만 불임 유전자를 후손에 효과적으로 퍼뜨릴 방법이 없었다. 한 모기에 불임 유전자를 넣어 야생 모기와 짝짓기를 하면 후손 절반에만 불임 유전자가 퍼진다. 이렇게 세대를 거듭하면 불임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극소수로 줄어든다. 일종의 희석 과정이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2015년 3월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이선 비어 교수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초파리 집단 전체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실제 가위가 아니라 유전물질과 효소를 결합시킨 형태다. 특정 DNA에만 결합해 그 부위를 잘라낸다.

타깃 말라리아 프로젝트는 비어 교수의 방법을 얼룩날개모기에 적용했다. 먼저 불임 유전자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가진 유전자변형 모기를 만든다. 이 모기를 야생 모기와 교배시킨다. 수정란은 두 모기로부터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받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짝을 이루는 상대 유전자에서 불임 유전자와 쌍을 이루는 부분을 잘라낸다. 잘려나간 부분은 불임 유전자를 복제해 메운다. 결국 100% 불임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된다. 이들끼리 교배해 나온 후손들도 당연히 불임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과학자들은 원하는 유전자를 집단 전체에 퍼뜨린다고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라고 불렀다.

게이츠재단은 타깃 말라리아의 유전자 드라이브 연구에 4400만달러(500억원)를 지원했다. 유전자 드라이브 연구로는 최대 규모의 지원이었다. 게이츠재단 필 란다조 부국장은 "저개발국가의 말라리아를 해결할 이상적인 방법이 유전자 드라이브"라고 밝혔다. 게이츠재단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유전자 드라이브 모기를 풀어놓으면 2년 안에 말라리아 모기 수가 지금의 1% 이내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집트 숲모기도 인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최근 태아에게 소두증(小頭症)을 일으켜 공포를 안긴 지카바이러스를 옮긴다. 뎅기열, 황열 등 치명적인 질병도 옮긴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자크 아델만 교수 연구진은 작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이집트 숲모기에서 수컷을 결정짓는 유전자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최근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을 이용해 이 유전자를 모기 집단에 퍼뜨리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암컷을 모두 수컷으로 만드는 '트랜스젠더' 방식이다. 피를 빨아 병을 옮기는 것은 암컷 모기이다. 나중에 수컷만 남으면 이 모기도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다.

다음 달 국제 가이드라인 추진

과연 인도적 멸종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모기가 사라지면 이를 먹고 사는 새나 곤충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생태계에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모기에 심은 불임이나 성전환 유전자가 다른 생물로 옮겨가 예기치 않은 멸종 연쇄반응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한 생물종의 멸종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유전자 드라이브가 새로운 전염병을 만드는 데 악용될 가능성도 조사할 계획이다.

과학계는 이미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말라리아 모기 멸종을 추진하고 있는 연구진을 포함해 27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작년 8월 ‘사이언스’에 “예기치 못한 유전자 유출을 막을 수 있도록 유전자 드라이브에 대한 강력한 규제안이 필요하다”는 청원서를 발표했다. 문제가 되기 전에 과학계 스스로 규제를 요청한 것이다. 미국 과학아카데미는 다음 달 유전자 드라이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게이츠재단도 아프리카 국가가 100% 수용하기 전까지는 결코 유전자 변형 모기를 방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기를 멸종시키지 않는 유전자 드라이버 기술도 나왔다. 미국 UC어바인의 앤서니 제임스 교수는 작년 11월 설치류에서 찾아낸 말라리아 항체 유전자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함께 가진 모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 모기를 야생 모기와 교배시키면 후손들은 더 이상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가 된다. 하지만 모기의 번식에는 문제가 없다. 미시간주립대 연구진은 2013년 모기의 몸에 깃들어 사는 공생(共生) 세균을 이용해 말라리아 전파력만 감소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원래 공생 세균을 갖고 있지 않은 말라리아 모기에 이 세균을 이식하자 암컷 모기가 말라리아 원충을 옮기는 능력이 3분의 1로 줄었다. 공생 세균이 말라리아 원충을 경쟁자로 여기고 공격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인도적 멸종에 대한 우려는 과장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타깃 말라리아 프로젝트의 안드레아 크리산티 박사는 “유전자 드라이브의 목표는 3500여종의 모기 중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단 3종”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의 아델만 교수도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는 숲이나 연못이 아니라 도시에서 빗물이 고인 곳에 산다”며 “이 모기가 사라져도 개구리나 물고기의 먹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모기를 없애느라 살충제를 쓰지 않아도 되므로 오히려 생태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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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는 이미 실험 중

질병을 막기 위해 모기 유전자를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옥시텍사(社)는 2009년 ‘시한폭탄’ 유전자를 가진 수컷 모기를 케이맨제도와 카리브해에 방사해 뎅기열 전염 모기 수를 80%가량 줄였다. 수컷의 생식 능력은 그대로 두고 나중에 태어날 알에서만 작동하는 자살 유전자나 아니면 암컷 후손의 날개만 망가뜨리는 유전자를 넣은 것이다. 최근에는 브라질에서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이집트숲모기를 없애는 실험을 하고 있다. 회사는 작년 브라질의 한 도시 근교에 시한폭탄 유전자를 가진 모기를 풀었더니 야생 모기 개체 수가 90%까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뎅기열 환자도 한 해 132명 나오던 것이 4명으로 줄었다고 했다.

브라질 보건 규제 기구인 안비사(ANVI SA)는 지난 12일 옥시텍의 유전자 변형 모기를 신의료기술로 분류했다. 안비사는 “유전자 변형 모기를 상업적으로 쓸 수 있는 법적 토대가 생겼다”고 했지만, 동시에 “먼저 기술의 안전성과 바이러스 전파를 줄일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당장 허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만큼 모기 종의 수명이 연장된 셈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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