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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딴 나도…과거 10년 다니던 회사서 일방적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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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래는 달라지겠죠" 희망의 미소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청각장애인 엄기원 씨가 자신의 수상작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장애인 근로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승환 기자]


"짧은 근속과 제한된 선택의 자유, 직장 내 차별은 '금메달리스트'인 제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엄연한 한국의 현실이죠."

국가대표라는 위상과 자신감이 무색하게 엄기원 씨(40)의 시선은 자주 아래를 향했다.

지난 3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엄씨. 그는 금메달리스트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은 대한민국의 엄혹한 현실을 쉼 없는 타이핑으로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인 그는 인터뷰를 위해 노트북컴퓨터를 가져와 기자와 필담을 나눠야 했다.

"내가 원하는 부분과 맞는 일자리가 없어 억지로 취직한 장애인이 많아요. 희망 취직 분야와 일치하는 일자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말이죠."

심지어 국가대표 그래픽 전문가인 그조차도 한때 잘 다니던 직장에서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뒤 차별감 등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올림픽에서 캐릭터 디자인 부문에 출전해 당당히 금메달을 땄다. 그와 함께 출전한 다른 동료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한국 장애인 대표선수단은 6년 연속 종합우승을 거머쥐는 쾌거를 달성했다. 엄씨가 출전한 캐릭터 디자인 부문은 주최 측이 제시한 주제를 가지고 선수들이 태블릿PC로 즉석에서 가장 창조적인 디지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독학으로 3D 그래픽을 공부해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그는 숱한 포기의 유혹을 물리쳐야 했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인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1982년 할리우드 SF 영화 '트론'이었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지만 세계 최초로 3D 그래픽을 적용한 화려한 영상에 그는 넋을 잃었다. 이때부터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가 되겠다며 독학으로 실력을 쌓기 시작해 20대 초입에 애니메이션 업체와 게임 업체 등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른 새벽부터 3D 그래픽을 공부하고 영화 '토이스토리'를 수십 번 돌려보며 그래픽 관련 외국 서적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한가족처럼 일했다고 생각한 게임 업체는 예고 없이 그를 버렸다.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는 일방적인 통보에 놀라 대표자 면담 등을 요구했지만 모두 묵살됐다. 결국 이게 끝이었다. 너무 화가 났지만 막상 소송이나 다른 행정 대응을 준비할 여력과 여유가 그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이라 의사소통이 불편하다고 해고를 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지금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죠. 당시 부당해고로 몇 년간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어요."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동료의 현실이 재기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비전문직 장애인의 경우 더 현실이 열악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장애인을 찾기가 무척 힘들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전체 장애인 임금근로자 52만6474명을 대상으로 현 직장에서 평균 근속 기간을 조사한 결과 '6년1개월'에 불과했다.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최근 3개월 평균 임금(174만7000원) 역시 전체 임금근로자의 75% 수준이다.

엄씨는 "많은 장애인이 기술을 배우고 싶은 이유도 바로 (한국 사회의) 저임금 구조와 연결돼 있다"며 "문제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과 기술 교육을 지원해주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그는 "우리 사회에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라고 말했다. 제발 '장애인은 신체적 한계 때문에 단순노무직밖에 안 된다'는 편견을 버려달라는 것이었다.

엄씨는 "이런 사회적 편견이 깨져야 장애인들도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세상에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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