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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울리는 포괄임금제]③판사 따라 다른 `고무줄`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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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현재 노동시장에서 적용되는 포괄임금제(★아래 용어설명)는 노동 관계 법령이 아니라 대법원 판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일관된 규정이 없다 보니 판례도 천차만별이고 어떤 성향의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소송 결과도 달라지는 등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일선 노무사들과 법학자들의 지적이다.

먼저 포괄임금제와 관련된 판례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됐다. 1980~1990년대에는 `기본임금을 결정하고 이를 기초로 모든 수당을 더하여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제반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면 포괄임금제를 유효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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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도 `제반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면`이란 문구는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해석이라 포괄임금제 확산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0년대로 넘어와선 포괄임금제를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근로기준법이 정한 규제를 위반하는 이상 허용될 수 없다`는 해석도 나왔다. 과거보다는 적용 기준을 엄격히 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업무나 근로시간의 형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또 `노동시장의 오랜 관행을 인정해야 한다`거나 `계산의 편의와 직원의 근무의욕을 고취하는 차원에서 인정된다`는 등 노동자보다는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판사들도 많아 이들의 판례에 의존하면 장시간 노동을 금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근본적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이 늘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갑래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82년부터 포괄임금제 관련 판례에서 `근로자의 승낙 하에`라는 문구가 발견되지만 1997년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근로자의 의사가 점점 무시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괄임금제를 과거 판례에만 의존하여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송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서정)는 "최근 연봉제가 생기면서 포괄임금제 형태의 일자리가 점점 늘고 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적절히 설명할 수 없어 과거 판례에 의존하고 있다"며 "하지만 사례가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이를 판례에만 의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의 입법화를 통해 일관된 법령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김홍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포괄임금제는 판례법리로 체계화됐기 때문에 해석론 상의 제도개선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입법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포괄임금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시간외근로 등에 대해 법정수당을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약정해 지급하는 임금제도. 근로기준법 등의 법령에 근거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해석하는 판례에 근거해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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