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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약 한번 잘못먹으면 평생 갈수도…'내성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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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호의 藥이야기 세상](4) 내성①]

요즘 저축은행게이트가 화제다. 금융당국의 철퇴를 맞고 영업정지가 되고 나서야 정권초부터 곪아 온 상처가 터지기 시작했다. 금융에 이어 건설 쪽도 역시 정권 말 막장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에서 국회 행정부 금융 건설 등 우리사회의 핵심을 겨누고 있다. 아직 발단에 지나지 않아 절정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먼 느낌이다.

우리 사회는 왜 권력과 유착된 추악한 정권비리를 끝없이 반복 재생산하는 것인가. 이 땅에 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이런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 대해 자연과학적 원리에 기반을 둔 약리학적 해답을 찾아보면 내성이란 두 글자로 정리된다.

우리 몸은 외부의 독성물질이나 박테리아(세균) 바이러스 같은 악성 미생물에 모두 내성을 나타낸다. 영어로 풀이하면 Tolerance(포용)과 Resistance(저항)으로 표현된다. 포용과 저항이란 두 단어가 내성이란 한 단어로 오버랩된다. 내성이라 쓰고 포용 더하기 저항으로 읽어야 하다니 묘한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반대의 의미영역을 가질 만한 두 집이 한집살이(Cohabitation)를 하다니...

여기서 포용이란 의미는 살아있는 미생물이나 암세포가 아닌 우리 몸 안의 특정부위에 직접 작용하는 약에 주로 사용한다. 약이 작용하는 타깃이 몸 안의 특정 세포막에 수없이 존재하는 수용체나 효소 같은 내인성 촉매물질인 것이다. 몸에 감염된 미생물이나 스트레스와 염증물질 등 누적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유전체까지 변형된 암세포처럼 살아 움직이는 게 목표가 아닌 경우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흔히 필로폰으로 알려진 메쓰암페타민에서 전형적이다. 주로 정신작용을 강화해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 주의력결핍성 과잉행동장애(ADHD)나 우울증약으로 쓰이던 약이다.

필로폰은 중추신경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유리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두뇌에서 피로감을 없애고 작업능력을 증진시키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자주 오래 쓰게 되면 메쓰암페타민이 달라붙는 뉴런세포의 수용체는 증가하는 대신 약물에 의해 유도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대한 수용체는 급격히 감소한다. 억지로 도파민 분비가 많아지니까 그만큼 수용체를 줄여 그 효과를 감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일 효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약물이 필요해진다. 또 약물효과의 위험성을 재는 지표에 해당하는 치료지수(TI)가 전반적으로 낮아진다.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약물의 양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약물의 양을 늘리다보면 유효량을 넘어 치사량에 가까워져 그 위험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러한 내성의 기전은 코카인이나 에페드린 세로토닌 등 중추에 작용하는 상당수 약물에 해당한다. 필로폰 같은 일부 약물의 경우 반응이 두 번째 이후부터 약효가 절반이하로 떨어지는 급강하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쉽게 중독에 빠지게 되는데 필로폰의 경우 편집증이나 환각성, 에페드린은 심박동 증가 같은 흥분성 부작용이 더욱 커질 위험을 안는다.

이같은 내성은 약물에 대한 우리 몸의 포용성이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약물에 대한 대사능력이 증가하거나 아니면 그 반응을 전달하는 신호체계의 핵심인 수용체 자체가 줄어들어 반응성이 약해짐으로써 더 많은 약물을 필요로 하는데서 빚어진 결과다.

이와는 반대로 수용체수가 증가하는 현상도 있다. 일명 알러지 반응과 같은 과민반응 비슷한 초과민성 현상을 말한다. 내성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이 경우엔 약물이 수용체에 잘 달라붙는 구조를 갖고 있으나 결합 후에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세틸콜린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하는 길항약에서 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프로프라놀롤 같은 심장박동을 억제하는 고혈압약 같은 경우 오래 먹게 되면 중지하는 게 매우 어렵다. 투약을 중지하는 경우 억제되던 신경물질의 효능이 갑자기 세지면서 협심증이나 초고혈압 같은 심각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고혈압을 비롯 당뇨 정신분열증 같은 만성질병의 경우 약을 한번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약물에 적응한 몸에서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줄어든데 대한 보상으로 수용체를 더 많이 만들어 작은 양의 약물감소에도 그로 인한 반응의 진폭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용수철을 일정기간 눌렀다가 놓으면 튀어 오르는 용수철의 탄성효과 같은 것이다. 과거 군부독재시절 억눌려온 민심이 폭발했던 당시 온갖 루머와 ‘카더라’ 통신이 민심을 좌우해 많은 동요가 생기는 현상과 같다.

내성이 약물에 대한 적응성이 커져 동일한 효과를 위해 더 많은 약을 필요로 하는 경우라면 초과민성은 약물의 작용이 극도로 예민해져 더 이상 끊을 수 없는 '음(陰)의 내성'인 것이다. 약물을 끊게 되면 거기에 적응된 우리 몸에 치명적인 과잉반응이 생겨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어떤 경우이든 우리 몸은 이미 병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약을 줄이거나 끊을 수 없는 만성병에 걸린 것이다. 권력유착에 따른 독성도 내성이란 기전을 통해 우리 사회를 정상상태로 돌려놓는데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인 셈이다.

5년마다 반복되는 권력비리도 결국 사회 전반의 내성에서 비롯된다. 비리에 대한 무감증이 자리 잡아 새로운 정권에 바로 적응하는 내성을 획득해 또 다른 치료약을 요구 하는 것이다. 권력과 물질, 감투라는 달콤한 유혹을 경계하고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약물이 일정 용량을 넘어서면서 수용체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변화를 거쳐 우리 사회는 비리에 무감한 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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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호선임기자 giel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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