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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시가 뭐꼬?" 칠곡 할매시인에게 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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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김현정의 뉴스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소화자 할머니

◇ 김현정>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헛둥지둥 나왔는데 / 시를 쓰라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

◇ 김현정> (웃음) ‘시가 뭐고’라는 시 한 편을 제가 지금 낭송해 드렸는데요. 참 재치있죠. 이 시를 쓴 주인공은 경북 칠곡에 사는 소화자 할머님입니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경북 칠곡의 할머님들이 한글 교실에 다니면서 시를 쓰셨는데요. 자그마치 89편을 모아서 멋진 시집을 한 편 내셨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그 분들중 한분 소화자 할머님, 소화자 시인 직접 연결을 해보죠. 할머님 안녕하세요?

◆ 소화자> 네.

◇ 김현정> 소화자 시인이라는 소개가 마음에 드셨어요?

◆ 소화자> (웃음) 높은 언덕에 훅 놓는 것 같아,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 김현정> 높은 언덕에 훅 올려놓는 것 같다, 이 말씀이세요?

◆ 소화자> 훅 올려놓는 것 같아.

◇ 김현정> 그나저나 내가 쓴 시가 담긴 시집을 탁 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할머님?

◆ 소화자> 할매는 기분이 좋은 둥 마는 둥, 그것도 몰라

◇ 김현정> 왜 좋은 둥 마는 둥이세요?

◆ 소화자> 글쎄 말이야. 좋아야 되는데 늙으면 좋은지 그런 것도 없어. (웃음)

◇ 김현정> (웃음) 제가 보니까 할머님 쓰신 시가 아주 운율이 기가 막혀요. ‘시를 쓰라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멋진 시를 쓰셨어요.

◆ 소화자> 그것밖에 모르잖아, 우리 시골에 사니까 그거밖에 모르는데 뭐.

◇ 김현정> 시금치씨 배추씨밖에 모르는데...

◆ 소화자> 선비가 시를 쓰지. 농부들한테 시를 쓰라고 하니, 버릴 씨하고 나락씨하고 그것밖에 더 아나, 아는 게 그것밖에 뿐이라. 선생님이 글 가르쳐놓고 그렇게 하라고 하니, 생각이 그것밖에 안 나서 그렇게 썼지.

◇ 김현정> 한글 선생님이 쓰라고 해서 뭔가 쓰기는 써야 하는데, 생각이 이것밖에 안 나서 쓰신 게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온 거예요?

◆ 소화자> 일하다가 왔는데 시를 쓰라고 하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그게 시인가 싶어서 써봤지.

◇ 김현정> (웃음) 그러면 이 시를 지으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신 거예요?

◆ 소화자> 그거요, 1시간 정도 생각해서 썼다 그게요. 아 그것도 글이나 옳게 쓸 줄 아나.

◇ 김현정> 1시간 정도 고민하고 쓰신 거예요, 겨우 1시간?

◆ 소화자> 네, 공부 시간 1시간.

◇ 김현정> 보통 이런 거 시인들이 쓰면 쓰고, 지우고 고민하고 하루 이틀 걸리고 이러는데. 할머님은 그냥 공부 시간 동안 한번에 휘리리릭?

◆ 소화자> 그렇지, 고거는 한 번에 썼지, 글 몇 자나 된다고 고거. (웃음)

◇ 김현정> (웃음) 글 몇 자나 된다고 그것을 뭐 썼다 지웠다 해?

◆ 소화자> (웃음) 많이 하라고 하면 못하지만 몇 자 안 되니까 썼지, 많이 하면 못해.

◇ 김현정> 잘하셨어요, 잘하셨고요. 그나저나 한글 배운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소화자> 3년 됐어요.

◇ 김현정> 어릴 때는 글을 배울 형편이 전혀 안 되셨던 거예요?

노컷뉴스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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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자> 내 이름만 쓸 줄 알았지 아무것도 몰라.

◇ 김현정> 그리고 나서는 평생 농사 지으시고, 시집가서 아이 키우시고 이러시느라고...

◆ 소화자> 시집 가서 50년 동안 아이 키우고 아이 가르친다고. 일만 하면서 살았지.

◇ 김현정> 평생 일만 하면서. 그러면 평생 한이 되셨겠어요. 이름 석 자밖에 못 쓰는 게..

◆ 소화자> 네,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요. 선생님이 지금 글을 가르쳐줘서.

◇ 김현정> 그래서 막상 내가 배우겠다고 시작은 하셨는데 이게 어렸을 때 배우는 것하고 연세가 드셔서 배우는 것 하고는 다르잖아요?

◆ 소화자> 선생님이 잘 가르쳐줘도 집에 가면 다 잊어버리고...

◇ 김현정> (웃음) 그러니까 학교에 가서 배울 때는 알겠는데 집에 오면 다 잊어버리고?

◆ 소화자> 손자는 잘 있는가. 군에 가서는 잘 있는가. 그런 것도 생각하다 보면 먼저 거는다 잊어버리고 없어(웃음)

◇ 김현정> 어쨌든 3년 만에 이제는 그냥 글 쓰는 정도가 아니라 시를 쓰는 정도가 되신 거예요, 할머니.

◆ 소화자> (웃음)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현정> 주변에서 깜짝 놀라지 않으세요?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 소화자> 대단하다고, 날 띄운다고 하겠지. 잘해서 그렇게 하겠나. 할매라고 띄운다고 하겠지.

◇ 김현정> 왜요, 우리 할머님 잘하시니까 잘한다고 하죠. 어릴 적 꿈은 뭐셨어요?

◆ 소화자> 어릴 때 꿈은 우리 8남매 컸는데. 밥을 못 먹어서 먹고 사는 게 그게 꿈이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글 같은 것도 생각이 없었어, 그때는. 일만 열심히 하면 사는 줄 알았지. 공부 같은 것도 생각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바보는 바보다. 글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몰랐어.

◇ 김현정> 밥 먹고 사는 것 외에는 다른 꿈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하셨구나.

◆ 소화자> 생각도 못했지. 시집 가서 시어른들 열심히 살았지. 죽으라고 하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고, 그렇게 사는 거다 해서 이래서 일했지. 아무것도 몰랐지. 글도 모르지. 바보같이 살았지.

◇ 김현정> 이제는 한글도 배우셨고 자식도 키우시고, 여유가 좀 생기셨잖아요. 내가 지금 만약에 다시 꿈을 꾼다면 어떤 거 한 번 해 보고 싶으세요?

◆ 소화자> 공부 많이 해보고 싶다. 글을 많이 해서, 농사 짓는 이런 것 하지 말고 편안하게 연필이나 쓰고 그런 거 해봤으면 싶으다.

◇ 김현정> 작가...그러니까 작가 한 번 해 보고 싶으세요?

◆ 소화자> 몰라, 작가인지 뭔지. 그저 편하게 살아봤으면 싶으다...

◇ 김현정> 편하게. 그러니까 호미 좀 내려좋고. 이제 연필 잡고?

◆ 소화자> 이제 뼈도 늙었다. 뼈도 늙더라.

◇ 김현정> 아... 이게 우리 어머님들의 모습입니다. 할머님, 작품들 꾸준히 써서 할머님만의 시집이 한 권 나오기를 제가 기대해 보고요. 그리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 소화자> 네, 고마워요. (웃음)

◇ 김현정> (웃음) 고맙습니다. 할머니 끊으시기 전에 할머님의 그 시, ‘시가 뭐고’를 할머니 목소리로, 시인의 목소리로 한번 낭독해 주시겠어요?

◆ 소화자> 네, 할까예?

◇ 김현정> 그러시죠.

◆ 소화자> 시가 뭐고.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헛둥지둥 나왔는데 / 시를 쓰라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

◇ 김현정> 역시. 작가의 목소리로 낭송하는게 제 맛이네요. (웃음) 할머님 건강하시고요.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 소화자> 네, 고맙습니다.

◇ 김현정> 경북 칠곡에서 할머님들이 특별한 시집을 내셨습니다. 그 분들 중에 한 분. 소화자 시인, 소화자 할머님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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