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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00명 채용의 함정]스펙 안본다는 기업들, 몇명 뽑는지는 안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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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울 한 구청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모습<기사와 관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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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최근 한 그룹 인사담당자는 계열사의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냈다가 지원자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채용인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룹 내부에서는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을 생각했다. 그런데 입사지원서가 무려 5000여명을 훌쩍 넘은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채용인원을 공개했다면 지원자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회사 방침상 어쩔 수 없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서류지원자 모두가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어안타깝다"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 등 일부 그룹 매년 상·하반기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채용공고를 내지만 이들 공고에 드러나지 않는 숫자가 있다. 바로 채용규모다. 재계 서열 1,2위이며 국내 최대 사업장 1,2위인 삼성과 현대차 두 곳만 해도 채용인원을 밝히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됐다. 그룹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보니 매년 4000명에서 5000명 수준을 뽑는다거나 전년수준을 밝히는 게 전부다.

계열사별로 직군별로 얼마의 인원을 뽑는가는 취업준비생(취준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인 동시에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수도권지역 대학 인문대를 졸업한 박기영씨(28·가명)는 "00명이나 000명이라면 대략 기업규모와 매출, 업종 특성 등을 통해 가늠을 할 수 있지만 채용공고에 아예 채용인원이 없으면 이공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인문계열 전공자로서는 지원할 의지마저 꺾인다"고 말했다.

각 기업들이 대학이나 지역을 돌며 여는 채용설명회에서도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채용인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 게 다반사다. 채용설명회에 나온 인사담당자가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과 채용절차 등에 대해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정작 '어느 계열사에서 어느 직군에서 몇명 정도를 채용하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거나 '특정직군별로 채용인원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는다'는 답변을 한다.

기업들로서도 할말은 있다. 그룹 또는 계열사별로 채용규모를 내부적으로는 정해 놓지만 이것을 대내외에 공표할 경우 돌아오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경영환경은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는 채용확대에 대한 요구가 반대로 커지고 있어 채용인원의 변동이 불필요한 오해와 불만을 살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박카스'로 잘 알려진 동아쏘시오홀딩스의 경우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과정에서 글로벌전략군에 지원한 취준생 30명을 대상으로 1차 면접까지 봤지만 실제론 한명도 채용하지 않고 통보도 안해 비난을 받았다. 수험생들은 아무런 공지 없이 채용 홈페이지의 해당 직군 합격자 확인란이 사라지자 큰 혼란을 겪었다.

회사 측은 지원자 1명이 이의를 제기한 하루 뒤에야 문자 메시지로 통보했다. 해당기업은 시스템오류라고 해명했지만 취준생들은 "서류를 통과한 30명을 면접까지 보고 한명도 적합한 인재가 없다고 하면 채용계획이 원래부터 없었거나 채용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재계 전반에 사업재편과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계열사 통폐합과 매각, 조직 개편과 인력재배치 등이 활발해지면서 계열사 및 직군별로 채용인원을 정하는 게 더욱 어려워진 상태다. 일부 그룹 계열사는 그룹 채용공고에서는 채용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내부적으로는 채용인원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신입사원 채용을 줄였다거나 특정직군의 채용계획이 없다고 하면 당장 내부에서부터 향후 사업을 줄이거나 조직개편, 매각 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오고 있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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