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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포괄수가제에서 '의료민영화의 유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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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portian

"영리의료법인 허용으로 인한 경쟁 심화가 의료산업의 효율성 증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국도 포괄수가제(DRG)와 같은 사전적 지급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지난 2007년 2월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 보고서는 2008년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기획재정부가 수립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계획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오는 7월부터 병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7개 질병군에 한해 제한적인 포괄수가제 강제적용이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의료계가 강력 반발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괄수가제가 영리병원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민영화와 연계해 바라본 분석이 새삼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성경제연구소의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와 과제'란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의료서비스산업에 경쟁적 요소를 도입해 산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의료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산업 고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작성됐다.

보고서는 그러한 관점에서 의료제도 선진화를 위해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고 사회적 고비용을 유발하는 행위별수가제를 의료기관의 비용절감 노력을 유도할 수 있는 포괄수가제로 전환하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위별수가제의 문제점으로 과잉진료 초래를 꼽았다.

보고서는 "의료기관에 대한 후불제 지급방식에서는 비용절감의 인센티브가 부재하다. 국내 건강보험이 실시하고 있는 행위별수가제는 후불제의 대표적 형태"라며 "후불제 보상방식에서 경쟁 강화는 공급자의 비용절감 노력보다는 과도한 시설과 장비투자를 통한 과잉진료를 유도함으로써 사회적 비용만을 높이는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미국을 예로 들며 포괄적 지급방식을 도입해 의료기관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보고서는 "미국 메디케어는 입원환자에 대한 지불보상방법으로 DRG를 이용한다"며 "미국의 경험에 따르면 DRG 하에서 경쟁 심화는 의료기관의 비용절감 노력으로 연결돼 의료서비스산업의 효율성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영리의료법인 허용으로 인한 경쟁 심화가 의료산업의 효율성 증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국도 DRG와 같은 사전적 지급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DRG로의 지불제도 전환을 영리병원 도입과 맞물려 의료기관의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대구한의대 강성욱 교수(당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워낙 오래된 내용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다만 행위별수가제의 비용 낭비적 지출구조 문제의 극복방안으로 포괄수가제를 언급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포괄수가제 도입이 의료서비스산업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것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강 교수는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를 위한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언급한 내용인 것 같다"며 "당시 포괄수가제를 시범적용하고 있는 상황도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괄수가제를 영리병원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바라본 분석은 또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작성한 '해외사례로 본 영리법인 병원 도입 방안'이란 보고서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는 외국의 영리병원 도입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형 영리병원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제도 개선 과제 중 하나로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을 꼽았다.

보고서는 "영리병원의 허용은 무엇보다도 수가의 현실화 및 진료비 진불제도의 개편, 요양기간 계약제 등을 통한 의료기관간 경쟁 원리 도입, 민간보험의 활성화 등 의료서비스 산업에서의 영리 추구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는 시장 여건이 조성된 이후에 시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현재의 행위별수가제도 아래에서는 과잉진료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며 "진료비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포괄수가제도 하에서는 자연스럽게 병원들의 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을 유도할 것이며 소비자들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포괄수가제를 병원들의 원가절감 노력이라는 경영효율화 측면에서만 부각해 분석한 것이다.

우연찮게도 두 보고서 모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산하 연구소에서 작성한 것으로, 의료민영화를 위한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관점에서 포괄수가제 전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행위별수가제가 과잉진료를 초래하기 때문에 포괄수가제를 통해 진료비 지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분석은 "의사들의 불필요한 진료행위를 줄여 진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복지부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포괄수가제로의 진료비 지불제도 전환이 새로운 수익기반 창출에 골몰하는 대기업 등에게는 의료민영화를 위한 제도적 여건 형성이라는 일종의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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