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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 못펴는 한글]①상표·간판서 밀리는 한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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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한글이나 고유어로 된 상표는 과자나 음료수, 한식음식점 같은 걸 제외하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둘러봐도 외국어 상표가 훨씬 많으니까요."

8일 오전 서울시 중구 명동.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인 만큼 수많은 상점과 식당들이 몰려 있었다. 대부분의 간판·입간판은 한글로 돼 있었지만, 화장품·의류 상점 등을 중심으로 알파벳(Alphabet)을 내건 상점들이 더 눈에 띄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이곳은 카타카나·한자 등을 내건 입간판들도 많았다.

세종대왕(1397~1450)이 한글을 창제한 지 569년이 됐다. 하지만 거센 세계화의 바람 앞에 각종 브랜드·간판에서 한글과 고유어는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상표·간판에서 한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는 외관에 치중하지 않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최근 우리말 연구학회인 '외솔회' 소속 김진희 한남대 교양융·복합대학 강사가 지난 8~9월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역 일대 간판 608개를 분석한 결과, 고유어를 사용한 간판의 숫자는 72개로 11.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래어로 된 간판은 204개(33.6%)로 가장 많았고, 혼용어 192개(31.6%), 한자어 140개(23.0%)가 그 뒤를 잇는 것으로 집계됐다.

외래어·한자어·고유어 간판의 비율은 업종별로 상이했다. 외래어 비중이 가장 많은 업종은 찻집으로 전체의 73.2%였다. 의료·미용 분야도 각각 75%, 47.5%로 외래어 비중이 컸다.

간판 외에 상표 역시 외래어가 대세다. 특히 고가의 상품일수록 상표명을 외국어에서 차용한 사례가 많다.

상표 가치평가 업체인 '브랜드스탁'이 발표한 아파트 연간 상표가치평가지수(BSTI) 순위에 따르면 20위권내 아파트 상표명 중 순 우리말로 된 것은 한화건설의 '꿈에그린' 하나에 그쳤다.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코오롱글로벌의 '하늘채' 등은 고유어와 외래어·한자어가 섞여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상표와 간판에서 한글·고유어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익숙함'을 꼽는다.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은 "브랜드의 언어구조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여도'와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며 "가격이 비싸고, 또 구매할 때 많은 고민이 필요한 상품의 경우 기대심리를 부여하기 위해 브랜드에 외국어를 쓰는 경향이 있고, 과자나 가격이 저렴한 상품은 친숙함을 부여하기 위해 친숙한 한글·고유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글·고유어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박 소장은 "겉만 치중한 한글 브랜드 네이밍은 효과를 보기 어렵고, 언어 공해만 될 소지가 있다"며 "예컨대 한정식 브랜드나 한류 문화상품에 한글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 처럼, 보다 전략적인 브랜드 네이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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