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6일. 전날 때늦은 무더위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직전 상황인 순환정전이 발생했음에도 하루 만에 최대전력이 6728만㎾에서 6740만㎾로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대지진 발생 후 일본은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절전으로 노인들의 열사병이 속출하자 노인이 있는 가정은 에어컨 사용을 촉구하는 TV방송을 하기도 했다. 일본은 15% 절전을 목표로 국가적인 절전운동을 벌여 21%를 절전하는 성과를 거뒀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이 전력은 물론 국민의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소비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는 전력 다소비 산업구조가 고착화됐다. 국내총생산(GDP)대비 전력소비량은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원가 미만의 전기요금으로 인해 한국전력의 최근 4년간 누적 적자가 8조원에 달하고 하루 이자비용만 60억원에 달한다. 이는 결국 국민의 혈세로 충당할 수밖에 없어 전기요금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전력과소비가 에너지 과소비로
15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1960년대 우리나라의 ㎾h당 전기요금은 3.28원이었다. 시내버스가 8원, 짜장면이 20원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50여년이 지난 2011년, 전기요금은 ㎾h당 90.3원이 됐고 시내버스는 1000원, 짜장면은 4000원으로 올랐다. 전기요금은 27배, 시내버스는 125배, 짜장면은 200배가 오른 것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2011년까지 전기요금은 21% 오른 반면 가스는 72%, 등유는 145%, 경유는 165% 올랐다. 이러한 가격 격차는 에너지원별 소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격이 급등한 경유는 27%, 등유는 57% 소비가 감소한 반면 가격 인상폭이 낮은 전기소비량은 63%가 늘어났다. 가격 시그널에 의한 소비량 증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싸지면서 에너지 소비 왜곡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1차 에너지보다 2차 에너지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전열기 사용이 급증하고 주물공장이나 비닐하우스 등에서 석탄과 유류 대신 전기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사용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하니 전기 사용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
2차 에너지인 전기는 생산과정에서 전환손실이 크게 발생함에 따라 전력과소비는 국가적 에너지 비효율을 심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가령 유류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경우 직접 유류난방을 사용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연료가 소비된다. 전기난방에 1000㎉ 열량을 투입했을 때 발생열량은 380㎉에 불과하지만 등유는 800㎉, 도시가스는 900㎉로 배 이상 높다. 이는 곧 전기 난방 등의 소비가 증가할수록 석유, 가스 등의 수입이 증가하는 악순환을 초래해 국가 손실을 야기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연간 1조원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OECD도 우려하는 값싼 전기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경제보고서에서 "높은 수준의 전기 소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비용에 맞춰 전기가격을 조정해야 한다"며 "한국의 낮은 전기요금이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OECD는 또 "실제 2007년 한국의 GDP 단위당 전기 소비량은 OECD 평균보다 1.7배나 높았다"며 "또 전기 가격이 부문별로 크게 달라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작성한 OECD 국가의 전기요금 수준을 보면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연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보면 매우 비정상적인 요금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전기요금이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 일본은 지난 4월부터 17%를 인상했고 대만도 15일부터 전기요금을 30% 이상 인상하는 현실화 계획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자원이 빈약한 상황에서 전력 과소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전기요금의 현실화뿐"이라며 "더 이상 방치하면 전력 과소비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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