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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정알 물살에 발 담그면, 가슴 한 켠 꿈틀대는 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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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 화양구곡 트레킹

“산 향기 개울바람 맞으며/ 수정 알 같은 냇물에 발 담고 서서/ 그의 님 기다린다” 충북 괴산의 화양구곡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수정 알’이다. 제8곡 학소대로 가는 다리 앞, 누가 새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진 시구에서도 이 글자만은 용케 알아볼 수 있었다. 너른 바위를 달구는 열기도 한풀 꺾이고, 계곡물에 발 담기도 차지 않으니 지금이 옛 선비처럼 화양구곡을 거닐기엔 딱 좋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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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은 갈은구곡 쌍곡구곡 선유구곡 등 빼어난 경치만큼 구곡문화가 발달했다. 화양구곡의 마지막 절경 파천의 매끄러운 바위 위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용의 비늘에 비유한 이름이 썩 어울리는 곳이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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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 떨어지는 빗물은 능선 하나 차이로 한강 물이 되기도 하고 낙동강 또는 금강 물이 되기도 한다. 괴산은 산줄기와 계곡이 많은 만큼 지형도 복잡하다. 조선중기(인조~숙종) 좌의정을 지낸 우암 송시열이 이름 붙였다는 화양구곡은 화양천을 따라 이어진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는 화양천은 청천면에서 달천과 합류되고, 달천은 충주를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 든다.

계곡 입구에서 제9곡 파천까지 물길은 약 4km, 계곡을 오가며 난 산책길은 치마주름처럼 들락날락 휘어지니 물길보다는 조금 길겠다. 그래도 차 한대는 거뜬히 지날 만큼 길이 넓고, 보도블록으로 가지런히 포장까지 해 놨으니 등산이랄 수 없을 만큼 걷기 편한 길이다.

달천과 합류하는 계곡입구는 폭이 제법 넓어 여름철엔 자연 물놀이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약 600m 상류에 위치한 대형주차장에 이르는 사이 제1곡 경천벽(擎天壁)을 지난다. 가파르게 솟은 바위절벽이 하늘을 받친 듯하다는 뜻이다. 주차장을 지나서도 제4곡 금사담까지 찻길이 이어지지만 걷느니만 못하다. 주변 식당들이 확보한 주차공간을 빼면 차를 세울 곳이 없다. 주차장 주변부터 키 큰 활엽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본격적으로 산 기운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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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 제4경 금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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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담 건너편엔 우암 송시열이 후학을 길렀다는 암서재가 운치있게 자리밥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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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 다리를 하나 건너면 왼편으로 작은 보에 갇힌 계곡물이 거울처럼 산 빛과 하늘빛을 담고 있다. 구름이 맑게 비친다는 제2곡 운영담(雲影潭)이다. 제3곡 읍궁암(泣弓巖)과 제4곡 금사담(金沙潭)은 바로 잇닿아 있다. 이 일대는 송시열 유적지다. 송시열이 효종의 죽음을 슬퍼해 새벽마다 통곡했다는 바위에는 눈물자국인양 커다란 구멍이 패여 있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만동묘(萬東廟)가 자리잡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을 모신 사당이다.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만들었다니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금싸라기처럼 모래가 곱다는 뜻의 금사담엔 사실 모래보다 바위가 많다. 그리 험하지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 한번쯤 발 담그고 피로를 씻기 좋은 곳이다. 계곡 맞은 편에는 송시열이 만년에 후학을 기르고 학문을 닦은 암서재(巖棲齋)가 운치를 뽐낸다.

계곡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게 마련이지만 화양구곡은 오를수록 넓어진다. 큰 바위가 첩첩이 쌓였다 하여 첨성대(瞻星臺), 구름을 찌를 듯하다 하여 능운대(凌雲臺),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이라 하여 와룡암(臥龍巖)이라 이름 붙인 5~7곡 주변에는 산자락 아래까지 하얗게 너럭바위가 깔려있어 그늘에서 한숨 쉬어가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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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 제9곡 파천은 발 한번 담지 않고 지나치기 어려울 만큼 물살이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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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 주변 바위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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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곡까지는 평지나 마찬가지고, 산길은 그제부터다. 하지만 계곡과 이어지는 길이기에 가파른 구간도 없고 보도블록도 말끔히 깔려 있다. 울창한 솔숲이 길 양편으로 이어져 물소리에 섞인 솔 내음이 더욱 그윽하다. 바위산 낙락장송에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제8경 학소대(鶴巢臺) 지나 조금만 더 오르면 최종 목적지 제9곡 파천(巴串)이다. 물살에 닳고닳은 바위가 넓게 펼쳐져 용 비늘을 꿰어 놓은 듯하다는 비유다. 동양에서 가장 완벽한 숫자로 봤다는 9경의 경치에 딱 어울린다. 옥반처럼 매끄러운 바위 위로 얇게 펴지며 미끄러지는 물살에 누구라도 한번쯤 발 담그지 않고 지나치기 어렵다. 오랜 시간을 두고 자리싸움이 치열했다는 증거들이 주위 바위마다 빼곡히 새겨져 있다. 관찰사○○○에 순찰사△△△도 모자라 그 자녀들 이름까지 큰 바위 작은 바위 가리지 않고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물살에 닳아 지워질 수도 있는 바닥에는 그나마 흔적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옛 선비들처럼 멋들어진 시 한 수 지을 능력까지는 안되더라도 이 물빛과 산 빛, 새소리와 바람소리라면 누구라도 가슴 한 켠에 꿈틀대는 시심을 안고 오게 될 듯하다.

괴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메모]

●화양구곡은 괴산에서도 남쪽 끝자락이다. 중부고속도로 증평IC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 청주상주간고속도로화서IC에서 약 40km 거리다. ●산과 계곡이 많은 괴산은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이름난 식당들이 있다. 우리매운탕(이하 지역번호 043, 834-0005)은 쏘가리 빠가사리 잡어 매운탕으로 이름난 식당이다. 괴산시외버스터미널 앞 주차장식당(832-2673)은 올갱이 해장국 전문식당이다. 다른 메뉴는 없다. 달천 등에서 잡히는 괴산 올갱이에 부추를 듬뿍 넣고 묽은 된장국처럼 끓여낸다. 읍내의 별미식당(833-2116)은 재배가 불가능한 자연산 버섯 전문식당이다. 능이두루치기 산버섯찌개가 주요 메뉴인데, 특히 능이버섯은 향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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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우리매운탕의 잡어매운탕, 주차장식당 올갱이 해장국, 별미식당의 능이버섯 두루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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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의 명물 중 하나가 논바닥 그림이다.

문광면 문광저수지 바로 아래 논에 황도 자도 적도 온누리벼 등 다양한 색상의 벼를 심어 ‘2015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라는 글자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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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문광면 논바닥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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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엑스포는 이달 18일부터 10월 11일까지 군청 앞 엑스포농원에서 열린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협력지사도 홍보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태호 지사장은 “유기농 산업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무공해 놀이체험으로 청정자연 괴산을 알리는 장”이 될 거라며 지역관광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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