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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벼랑 끝 청춘들…끝없는 도전·좌절, 희망마저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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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빚 안고 사회생활…취업해도 '질나쁜 일자리' 맴돌아

결혼·출산 꿈 꾸기도 어려워…극단적 선택 이어지기도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찾아가는 취업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이보배 이효석 기자 = #1. 20일 저녁 부산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박모(33)씨가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부산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박씨는 직장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공무원 시험도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주변에 괴로움을 호소해왔다. 가족과 친구들은 박씨가 최근 들어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그의 마지막을 기억했다.

#2. 정승환(30·가명)씨는 2013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4년째 '취업준비생'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인(IN) 서울' 대학을 나온 정씨의 꿈은 방송 프로듀서(PD)가 되는 것이다. 한때는 PD만 바라보고 방송사 시험에 전력했지만 올해 서른을 넘기면서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원서를 내고 있다.

정씨는 그래도 꼭 정규직만 지원한다. 2년 전 경험을 쌓겠다며 케이블 방송사에서 조연출로 일할 때 집에도 못 가고 고생했지만 박봉에 좌절한 기억 때문이다.

정씨는 "취업이 안 되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수밖에 없다.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매달리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은 이제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은 9.4%로, 전체 실업률(3.7%)의 2.5배 수준이다.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 상태라는 얘기지만, 당사자인 청년층은 체감 실업률이 훨씬 높다고 입을 모은다.

대다수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스펙 쌓기'에 전념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원하는 직업과 직장을 찾는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보며 부러워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도 잠시다. 졸업 뒤에도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현실에 마음만 급해진다. 이대로 백수로 굳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나 닥치는 대로 '묻지마 지원'도 해보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취업 준비생들을 현실적으로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경제적인 문제다.

'연간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 대학을 다닌 20∼30대 상당수가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업을 마치면 바로 대출금 상환 압박에 부닥친다. 여기에 학원비, 생활비 등 취업 준비에 드는 최소 비용을 마련하느라 청년들은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한다.

2011년 졸업 후 2년4개월간 학군장교(ROTC)로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준비 중인 유인환(27·가명)씨는 "학교 다닐 땐 정말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며 "방학이면 교외에 있는 고깃집에서 2개월 동안 뼈 빠지게 일해 400만원 정도를 모아놓고, 학기 중엔 주말에 택배 상하차 일을 하거나 커피숍에서 일해 생활비를 댔다"고 떠올렸다.

유씨는 "집에서 용돈 받아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도 있지만, 주위를 보면 대다수가 알바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스펙 만드는 데 필요한 시험 준비를 한다"며 "학자금 대출로 생긴 1천만원 빚은 다행히 장교 생활을 하면서 청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승환씨도 전에는 집에서 용돈을 받아서 쓰고 틈틈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했지만 2013년 아버지가 퇴직한 뒤로는 집에 손 벌리기가 어려워졌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부모님은 '네가 지금 그럴 때냐. 빨리 취업하라'고 답답해하시는데, 공부하게 용돈 달라고 하기가 어렵다"며 "작년 4월부터 학원에서 강의를 촬영하는 생계형 알바를 시작했다"고 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월 90만원을 받는다는 정씨는 "오후 6시에 일을 마치고 저녁 먹고 들어오면 3∼4시간 정도 취업 준비를 하는 셈"이라며 "취업준비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돈을 벌어서 써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대졸자 1만7천376명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대학 졸업후에도 부모와 같이 살거나 용돈을 받는 '캥거루족'은 51.1%에 달했다.

10.5%는 부모와 동거하면서 용돈을 받고 있었고, 35.2%는 용돈을 받지 않지만 부모와 함께 살았다. 부모와 따로 살면서 용돈만 받는 대졸자는 5.4%였다.

심지어 기혼 대졸자 중에도 14.0%가 부모와 같이 살거나 용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능력개발원은 "졸업 후에도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취업에 성공했지만 낮은 연봉과 복지 수준,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을 견디지 못해 이직을 반복하는 예도 많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이진경(27·여·가명)씨는 지금 네 번째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2012년 처음 2년 계약직인 모 공단 임원 비서로 입사했지만 10개월 만에 임원이 바뀌며 새 비서를 데리고 와 사무보조 업무로 이동해야 하게 되자 직종을 바꾸고 싶지 않아 퇴사했다.

이씨는 운 좋게 바로 정규직으로 대기업에서 비서로 일하게 됐지만 이 또한 버거웠다고 한다.

이씨는 "평균 퇴근 시간은 저녁 10시였고 새벽 3∼4시에 퇴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며 "칼퇴근을 강조하면서도 저녁 6시에 일을 던져주고는 다음날 아침까지 해놓으라고 지시하는 식이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 나왔다"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학자금 대출 등 짊어진 짐은 많은 청년들의 삶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2013년 졸업 뒤 2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김승일(28·가명)씨는 "친한 친구가 중견기업에서 연봉 3천400만원을 받으며 일하는데 매달 대출금을 갚는데 150만원을 쓰더라"며 "내 또래 사람들을 보면 전부 빚 갚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실 결혼만 안 하면 계속 이렇게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올해 정규직 공채에 붙지 못하면 그냥 비정규직 자리라도 취직할 생각인데, 정규직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결혼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에게는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말은 이미 유행이 지난 말이다. 여기에 더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도 포기한 '5포 세대'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접은 '7포 세대'라는 말이 나왔다.

취업난에 허덕이다 취직을 해도 모아놓은 돈이 없어 결혼을 결심하기 어렵고, 결혼을 해도 많은 육아비용과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현실은 이제 특이할 것이 없게 느껴진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 앞선 박씨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5월 25일 경기도 부천에서 '사는 게 힘들다'는 유서를 써놓고 세 자매가 나란히 목숨을 끊었다. 언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동생은 2005년 이후 취업 기록이 없었다.

당장 생활이 극도로 궁핍하진 않은 가정이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미래에 삶의 의욕을 잃은 게 아니냐는 쓸쓸한 시선을 받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었다. 자살은 10대와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였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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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도 다시 한 번 꼼꼼하게(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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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기업체에 제출할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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